보육원 아이들에게도 하나님 사랑을, 영화처럼

입력 2020-06-16 00:04
이진영 영화 번역가가 최근 서울 강서구 개화그리스도의교회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영화는 때로 우리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내곤 한다. 자신이 번역한 영화 속 주인공처럼 보육원 아이들에게 따뜻한 스승이자 인생 멘토로 살아가는 이가 있다.

서울 강서구 개화그리스도의교회(최윤권 목사)에서 최근 영화번역가 이진영(55)씨를 만났다. 작지만 아담한 교회 옆에 지온보육원이 있다. 이곳은 버려진 아이, 부모가 있지만 보호가 필요한 50여명의 아이들이 공동체 생활을 하는 곳이다. 이씨의 방문 소식을 들은 보육원 아이들이 찾아와 인사를 건넸다. ‘코로나19’로 접촉이 금지돼 있어 멀리서 손 인사로 아쉬움을 달랬다.

이씨는 1999년 영화 ‘007언리미티드’를 통해 번역가로 데뷔했다. ‘신은 죽지 않았다’ ‘언터처블’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등 많은 외화가 그의 손을 거쳤다. 지난달 28일 개봉한 영화 ‘레미: 집 없는 아이(포스터)’도 번역했다. 이 작품은 자신이 버려진 아이란 걸 알게 된 소년 레미(말룸 파킨)가 보육원에 버려질 위기의 순간, 그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본 거리의 음악가 비탈리스(다니엘 오테유)를 만나 꿈을 꾸고 가족을 찾아가는 모험과 여정을 그린 영화다.


이씨는 “수십 편의 영화를 번역했지만, 이번 작품은 가족에게 버림받은 보육원 아이들을 생각하며 눈물로 완성했다”며 “아이가 어른의 길잡이가 되기도 하고, 아픔은 더 큰 사랑으로 승화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영화 속에 녹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영화를 번역하는 동안 아버지가 별세하는 아픔도 겪었다. 그는 “어머니에 이어 아버지까지 돌아가시자 부모가 없다는 상실감이 컸지만, 잠시였다”면서 “보육원 아이들은 이런 슬픔을 겪을 권리조차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어 “부모가 없어도 우리에겐 하나님이 계시고,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보육원 아이들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이씨는 1986년 연세대 영어영문학과 재학시절 친구 따라 나간 기독교 동아리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믿음의 선후배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나온 곳이 이곳 지온보육원이었다.

이씨는 영화 속 주인공 비탈리스를 많이 닮았다. 레미의 성악 재능을 발견하고 꿈을 심어주는 비탈리스처럼 그는 보육원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한 달에 한 번 집으로 초대해 함께 떡을 떼며 신앙 안에서 더 큰 꿈을 꿀 수 있도록 돕는다. 2015년에는 자신이 번역한 영화 ‘필로미나의 기적’ 시사회를 통해 모금한 돈으로 보육원 어린이 캠프 행사도 개최했다.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기쁨도 있지만, 참고 기다려줘야 하는 순간도 있다. 이씨는 “아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 은혜를 더 깊이 깨달았다”면서 “보육원 아이들이 잘 자라도록 지켜봐 주고 힘이 돼주는 것이 내 인생의 마지막 소명”이라고 말했다.

글·사진=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