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 오세요”… 잠시 쉬었다 가는 영성의 집, 제주임마누엘하우스

입력 2020-06-16 00:01
제주임마누엘하우스의 예배실 모습. 유리벽 너머로 제주 북쪽 바다가 보인다.

“찰싹, 찰싹.” 파도가 제주 가문동포구에 정박한 어선을 때린 뒤 잘게 부서졌다. 이따금 갈매기가 방파제 끝의 빨간색 등대를 지나 먼바다로 날아갔다. 인적은 드물었다.

이곳 작은 포구와 마주하고 있는 제주임마누엘하우스(원장 임상필 목사)를 지난 12일 찾았다. 쉼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기도와 묵상의 집인데 수도원으로도 불린다.

임마누엘하우스의 외벽은 제주 현무암 판석으로 마감돼 있다. 벽의 곳곳이 십자가 모양으로 뚫려 있는 게 눈길을 끈다. 실내는 어두웠다. 몇 걸음 옮기자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느낌이 들었다. 대신 프랑스 테제공동체의 성가가 흘러나왔다.

“어서 오세요. 수도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인기척을 느낀 임상필 목사가 어둠 속에서 인사를 건넸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 쉬었다 가는 집이에요. 묵상하고 기도하며 노동하는 곳이죠. 처치스테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아직은 이곳을 찾은 이들이 없지만, 곧 오겠죠.”

임상필 목사가 지난 12일 예배실에서 수도원 영성을 설명하는 모습.

미국에서 영성지도학을 전공한 임 목사는 오래전부터 수도원 설립을 꿈꿨다. 최근 문을 연 임마누엘하우스를 통해 그 꿈을 이룬 셈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개원식은 못했지만, 지친 이들을 위해서는 이미 문을 열었다.

165㎡(50평) 면적의 건물에는 세 개의 방이 있다. 집기는 작은 침대와 책상, 옷장이 전부다.

외부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면 예배실이 있다. 사방이 유리로 마감된 예배실에서는 제주의 북쪽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이곳에서 주일 예배도 드린다.

예배실 뒤로는 330㎡(100평) 규모의 정원이 있다. 정원은 걸으면서 기도하는 야외 기도처다.

노동도 중요한 일과 중 하나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정원을 가꾸거나 10㎞ 떨어진 창암재활원에서 중증장애인을 돕는 봉사활동에 참여해야 한다. 수도원 안에서는 서로 말을 할 수 없다.

“시끄럽고 복잡한 일상을 피할 수 있는 곳입니다. 나와 하나님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자리이기도 하죠. 묵상하고 기도하며 가슴속 응어리를 내려놓을 수도 있습니다. 수도원이 정한 침묵과 묵상, 기도, 노동 등의 규칙을 지킬 수 있는 분이라면 누구라도 오실 수 있습니다. 사용료는 없어요. 마음 닿는 대로 헌금을 할 수는 있습니다.”

임 목사는 수도원이 로마 가톨릭의 전유물이 아니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무엇보다 필요한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우리나라 기도원에는 늘 교인들이 많아서 분주한 면이 있습니다. 조용히 기도하기는 어렵죠. 게다가 코로나19로 많은 사람이 모이는 수련회를 진행하는 것도 어려워졌습니다. 홀로 기도하는 수도원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임마누엘하우스가 그런 공간으로 자리잡길 소망합니다.”

제주=글·사진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