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에 ‘폭탄’ 프레임이 붙은 것은 참여정부 때부터다. 참여정부는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2003년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했는데 ‘세금 폭탄’이라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렇다고 부동산 가격 급등세를 막지도 못했다. 부동산 세금 논란은 임기 내내 참여정부를 괴롭혔다.
2013년 정부가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꾸면서 비과세·감면을 축소하는 세제 개편안을 내놨다. 10년 전 집권당 시절의 수모를 잊지 못한 탓일까. 야당이던 새정치민주연합은 개편안을 ‘서민을 벼랑으로 내모는 증세’로 규정하며 ‘세금 폭탄’ 용어를 돌려줬다. 급기야 바뀐 세법이 적용된 뒤 2015년 연말정산에서 많은 이가 세금을 토해내자 국민 분노가 들끓었다. 박근혜 정부의 지지율은 추락했다.
정권의 뇌관으로 여겨진 증세 담론이 코로나 경제위기에서 나온 것은 그래서 의외다. 멍석을 깐 것은 정부였다. 코로나 사태 극복을 위해 사상 처음 전 가구에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공짜 돈의 위력은 대단했다. 국민은 만족했고 침체된 내수에 온기가 돌았다. 국민 반응을 살핀 정치권이 이번에는 정기적으로 돈을 주는 ‘기본소득’을 입에 올렸다. 2차 재난지원금, 전 국민 고용보험 등 복지 아이디어들도 줄줄이 이어졌다.
모든 국민(약 5100만명)에게 매월 30만원의 기본소득을 준다면 1년에 180조원이 넘는 돈이 필요하다. 50만원이면 300조원을 훌쩍 넘는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위한 ‘한국형 뉴딜’ 사업에도 막대한 돈이 투입된다.
반면 국세 수입은 경기침체 여파로 올 들어 4월까지 지난해 동기 대비 9조원 가까이 줄었다. 나라의 실질 살림살이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같은 기간 56조6000억원 적자로, 사상 최악이다. 곳간이 비었는데 돈 쓸 곳이 많다면 해결 방법은 두 가지다. 국가가 빚을 내거나 아니면 세수를 늘리든가. 증세 필요성은 이런 과정에서 싹텄다.
정부는 일찌감치 선을 그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현 상황에서 증세 논의는 “차를 몰면서 액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자는 것”이라며 일축했다. 시스템 개편, 사각지대 세수 발굴이 선결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고전적인 교과서적 답에 불과하다. 국민의 복지 눈높이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어서다. 1년 전에 누가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상상했을까. 무상 시리즈는 지금도 분야를 막론하고 퍼져 나가고 있다. 2년 후 들어설 새 정권에서 복지 수요가 줄어들 거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부유층과 대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핀셋 증세도 한계가 있다. 매년 많은 이익을 남기지 않고서야 전 국민 복지를 이들이 책임질 수 없다. 올해 1~4월 법인세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조2000억원이나 줄었다. 반면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20.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4.9%, 2018년 기준)에 못 미친다. 지난해 소득세를 한 푼도 안 낸 근로자 비중은 38.9%다.
미국의 조지 W 부시가 대통령이 된 뒤 백악관은 ‘세금 구제’라는 말을 썼다. 조지 레이코프 교수는 이를 “과세는 고통이다. 고통을 없애주는 사람은 영웅이고 그를 방해하는 자는 나쁜 놈이라는 프레임”이라고 했다(‘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과세가 고통이긴 하지만 세금 폭탄이라는 프레임의 유효성도 약발이 다해가고 있다. 지속적인 복지 추진과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려면 결국 보편적 증세밖에 답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때다.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는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경제주체들이 한 발씩 양보하며 나라를 살렸다. 코로나 위기에서 어찌 보면 증세 대타협의 시간이 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편 가르기와 진영논리에서 벗어난 솔직한 소통이 전제여야 함은 물론이다.
고세욱 경제부장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