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장신대와 장로회신학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부교역자로 일하던 반정헌(63) 경기도 파주 나눔교회 목사가 교회를 개척한 것은 1997년이다. 그는 ‘사람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목회하겠다’며 재정 준비도 없이 고양 주엽동 2억4000만원짜리 상가를 얻었다.
반 목사는 “개척교회가 정말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면 재정을 채워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면서 “그래서 상가 계약 후 부모·형제, 친척은 물론 주변에 도와달라는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 놀랍게도 몇 차례 잔금을 치를 때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분들을 통해 수천만 원의 재정이 마련됐다”면서 “아내, 세 아이와 개척교회를 시작하면서 양식이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기로 했기 때문에 나눔교회는 처음부터 자립교회였다”고 전했다.
하지만 IMF 구제금융 사태가 터지면서 은행이자율이 23%까지 치솟았다. 반 목사는 “새벽예배 등 타 교회 성도들이 은혜를 받고 헌금하면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다”면서 “그러나 아무리 어려워도 절대 외부에 도와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어떻게 세워가시는지 증거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교회 개척 후 3년 만에 100여명이 모였다. 상가교회에 있으면서도 경북 김천 지역 교회 개척을 위한 헌금을 보냈다. 중국, 필리핀, 남수단에도 선교헌금을 보냈다. 반 목사는 “교회가 그렇게 귀한 곳인지 그때 알았다. 개척하고 처음엔 너무 좋았다”면서 “하나님께서 억지로라도 교회개척을 하게 하셨던 이유도 알았다. 얼마나 좋았던지 강단에서 자며 예배당 바닥을 무릎으로 청소하라고 하면 할 정도였다”고 했다.
그러나 교회개척 후 7년 되던 해와 10년 되던 해에 위기가 왔다. 반 목사는 “처음 신학교에 입학했을 때 하나님께선 ‘주의 종을 세우는 사명을 감당하라’는 비전을 주셨다. 교회 현상 유지는 됐지만, 그 비전이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답답한 마음에 산에 올라가 간절히 기도했지만, 길이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신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현실 앞에 지치고 회의감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상가교회 목회에서 획기적 변화가 일어난 것은 2015년 1월 나눔영성원장인 김헌식(60) 장로를 만나면서부터다. 반 목사는 미국에서 목회하는 사촌 동생의 추천으로 성경을 800독 이상 한 김 장로를 간증 강사로 초청했다. 김 장로는 생소한 영의 세계 이야기만 했다. 반 목사는 처음엔 김 장로의 말이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다 대화를 나누면서 말씀을 보는 관점이 바뀌기 시작했다.
반 목사는 “그동안 나름대로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고 성경도 잘 가르친다고 자부했다”면서 “하지만 영의 관점으로 보니 주님은 ‘나는 네가 건물 세우는 것에 크게 관심이 없다. 나는 네가 만날 대상이지 너의 연구대상이 아니다’며 책망하고 계셨다. 그때는 정말 망치로 머리를 맞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반 목사가 영의 관점으로 보니 말씀은 주석이나 신학서적으로 분석할 대상도, 육이 잘되는 도구도 아니었다. 천국과 지옥이 전부였다. 그는 “부끄럽지만, 설교와 성경공부를 위해 복음을 ‘연구대상’으로 여겨왔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면서 “천국 복음은 내 죄와 어둠을 드러내 회개하도록 하시고 영을 살리시는 생명의 말씀 그 자체였다”고 고백했다.
이어 “영의 세계에 더 깊이 들어갈수록 하나님 자리에 앉았던 자아를 내려놓고 회개의 기도밖에 드릴 게 없었다”면서 “지난 목회를 돌아보니 나는 성도들의 영을 메마르게 하는 ‘영적 살인자’였다. 철저히 회개하고 주님께 모든 것을 묻는 목회가 그때부터 시작됐다”고 말했다.
성도들은 강단 메시지가 변하자 당황했다. 일부는 떠났다. 그러나 회개의 말씀을 계속 전하자 성도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죄를 찾아 회개하면서 개인과 가정, 자녀의 삶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반 목사는 “영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 목회를 하니 하나님께서 여러 가정에 물질을 부어주시는 게 보였다”면서 “40년 전 신학교에 입학할 때 받았던 소명을 실천할 수 있는 길도 이때부터 열리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2018년 김 장로를 중심으로 목회자 영성 회복에 뜻을 같이한 목회자들이 모였다. 반 목사는 이들과 함께 호남지역 기도운동의 중심지였던 9만9000㎡(3만평)의 전남 곡성 다니엘수양관을 인수하고 나눔영성원으로 새롭게 단장했다. 반 목사는 나눔영성원 이사장으로, 김 장로는 원장으로 사역에 지친 목회자와 성도의 영성을 회복하는 섬김 사역을 펼친다. 나눔교회도 개척 23년 만에 파주 교하지구 종교용지 3303㎡(1000평)를 매입하고 지상 4층 건물을 세워 최근 입당예배를 드렸다.
반 목사가 새롭게 인식한 영의 목회는 어떤 것일까. 반 목사는 “소돔과 고모라 시대처럼 영적으로 어두운 시대 인간의 지식으로 아무리 성경을 연구한들 아무런 역사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며 “목회는 빛의 세계인 영적 세계로 이끄는 것으로, 말씀에 청종하는 삶 그 자체가 돼야 한다”고 귀띔했다. 이어 “목회자는 육이나 혼의 관점이 아니라 반드시 영의 관점에서 목회해야 한다”면서 “사변적 신학을 내려놓고 주님을 진실하게 만나고 보니 평안과 기쁨, 감사뿐이다. 이것이 목회자와 성도, 한국교회가 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파주=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