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엔 리선권, 저녁엔 김여정… 北 이틀간 4차례 ‘말폭탄’

입력 2020-06-15 04:02

북한은 단 이틀 사이에 비난 담화를 네 차례나 내며 남한과 미국을 맹렬하게 몰아붙였다. 대남 담화는 아침 일찍, 대미 담화는 밤늦게 발표해오던 암묵적 관행을 깨고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등 여러 고위 당국자를 내세워 시간대를 가리지 않고 연쇄적으로 담화를 내놨다. 그만큼 비난 담화에 무게를 실은 것이다. 특히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위임을 받은 김 제1부부장이 대남 군사행동 위협을 공개적으로 표명함에 따라 조만간 북한군 차원에서 실질적인 움직임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릴레이 비난전의 시작은 리선권 외무상이 끊었다. 리 외무상은 지난 12일 1차 북·미 정상회담 2주년 담화에서 “조·미(북·미) 관계가 나아진 게 없는데 싱가포르에서 악수한 손을 계속 잡고 있을 필요가 있겠는가”라며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맞서 힘을 키우겠다”고 주장했다. 이는 ‘핵전쟁 억제력’ 강화 의미라고 조선신보는 전했다.

이어 장금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그날 밤늦게 나와 “북남 관계는 이미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남조선 당국에 대한 신뢰는 산산조각이 났다”며 “이제부터 흘러가는 시간들은 남조선 당국에 참으로 후회스럽고 괴로울 것”이라고 위협했다.

북한의 ‘말 폭탄’ 공격은 13일에도 이어졌다. 권정근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은 우리 외교부 당국자가 전날 ‘북·미 대화의 조속한 재개’를 언급한 데 대해 “말 같지도 않은 헛소리를 치는데 참 어이없다”고 비난했다.

이어 약 7시간 뒤 김 제1부부장이 나와 “배신자들과 쓰레기들이 저지른 죗값을 깨깨(모두) 받아내야 한다는 판단과 그에 따라 세운 보복 계획들은 국론으로 굳어졌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잇달아 담화문을 낸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북한이 우리 측에 서운한 감정을 강하게 드러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14일 “우리 정부 대응이 북한의 화를 더 돋운 것으로 보인다”며 “그래서 밤이고 새벽이고 가리지 않고 담화를 내놓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제1부부장이 담화를 내놓은 것은 지난 4일에 이어 9일 만이다. 첫 담화가 대남 비난전의 신호탄이었다면 두 번째 담화는 대남 부서와 군부 차원의 실제 행동을 예고하는 성격이 강하다. 김 제1부부장은 “말귀가 무딘 것들이 협박용이라고 오산하거나 횡설수설해댈 담화보다는 연속적인 행동으로 보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제1부부장이 북한군 총참모부에 향후 대남 조치의 권한을 넘겨줄 수 있다고 발언한 것은 그가 군부에 상당한 영향력이 있음을 암시한다.

김 제1부부장이 직접 군사행동을 공언함에 따라 북한군이 남북 접경지역에서 무력 시위를 벌일 수도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우선 대북전단을 격추하겠다며 우리 측을 향해 고사총을 쏘는 등 군사분계선(MDL) 일대의 화력 도발 가능성이 거론된다. 서해 해안포문을 개방하고 사격 훈련을 실시하거나 북방한계선(NLL) 일대에서 해상 교전을 걸어올 수도 있다.

한편 옥류관 주방장 오수봉은 대외선전매체 ‘조선의 오늘’ 기고문에서 “평양에 와서 이름난 옥류관 국수(냉면)를 처먹을 때는 무슨 큰일이나 칠 것처럼 요사를 떨고 돌아가서는 지금까지 전혀 한 일도 없다”고 주장했다. 오수봉은 비난 대상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문재인 대통령 등 우리 측 인사들이 2018년 9월 평양 방문 당시 옥류관에서 오찬을 했던 사실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조성은 손재호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