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한옥마을 안에 있는 완판본문화관. 이곳은 기록문화의 중심이었던 전주의 자긍심을 다시 꽃 피우고 있다.
완판본문화관은 2011년 10월 18일 문을 연 이후 조선시대 전주에서 만들어진 각종 출판 문화유산을 보전해오고 있다. 또 출판문화의 중심지이자 기록문화의 산실이었던 전주의 역사와 문화를 재조명하고 있다.
‘완판본’은 전주의 옛 지명인 ‘완산’에서 활발히 출판된 옛 책과 그 판본을 말한다. 전라감영에서 발간한 ‘완영본’과 민간에서 발간한 ‘방각본’이 이에 해당한다. 전주시는 이를 계승하고자 완판본문화관을 지은 뒤 민간에 위탁했다. 2017년 1월부터 새롭게 위탁을 맡은 대장경문화학교는 완판본과 목판인쇄문화를 알아볼 수 있는 전시를 비롯해 복원사업, 판각 체험, 문화행사, 교육 프로그램 등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옛책 만들기와 목판 인쇄, 목판화엽서 만들기 등의 체험 행사엔 1년에 6000명 안팎이 참가하고 있다.
지난 사업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2017년 ‘완판본 심청전’의 목판 복각(復刻). 작업은 2007년 시작돼 10년간의 땀과 정성이 스며들었다. 안준영 관장과 그의 문하생들이 동참해 산벚나무를 가로 52㎝, 세로 27㎝, 두께 5㎝ 정도로 자른 뒤 그 위에 칼로 한 글자씩 새겼다. 이렇게 36판을 만들어 상·하권 합쳐 71장의 책을 만들었다.
우리나라 목판 복원 작업이 대부분 국가나 기관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민간에서 추진된 것이어서 의미가 매우 컸다. 문화관은 그해 연말까지 ‘100년 만에 핀 꽃, 완판본 심청전’이란 제목으로 전시회도 가졌다.
“우리 문화관은 해마다 한글날 주간에 다양한 문화행사를 열고 있습니다. 전시와 체험, 교육 프로그램 등으로 문화 원형 전승의 중요성과 완판본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있지요.”
안은주 학예실장은 “‘기록문화를 꽃 피우다’라는 문화관의 미션을 바탕으로 역사적 가치를 되새기고 관객과 소통하며 전주 출판문화의 맥을 이어가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화관은 또 다양한 완판본 서적과 인쇄본을 선보이는 상설 전시도 하고 있다. 올해 주제는 ‘완판본, 서책으로 전주를 읽다’로 오는 9월까지 이어진다.
대장경문화학교와 함께 실시하는 무료 전통판각 교육도 인기다. 전주의 목판 인쇄 문화를 바로 알고 완판본의 맥을 이어가기 위한 이 프로그램은 2013년 시작된 이후 350여명의 시민들이 수강했다. 17일 8년차 교육을 시작한다. 기자도 “배우고 싶다”고 닷새 전 문을 두드렸으나, 이미 인원이 찼다고 “내년에 다시 오라”는 답변을 들었다.
완판본문화관이 최근 3년간 펼친 사업은 120여개. 그 가운데 ‘목판으로 읽는 뜻밖의 심청전’, 전주독서대전과 연계한 ‘책 깎는 소년, 완판본에서 놀다’, 주민 참여 전시 ‘완판본 판각 삼매경’, 인문학 특강 자료집 ‘완(完) 책방’ 발간 등의 사업이 관심을 모았다.
개관 10년차를 맞은 문화관은 목판 복원 사업과 출판 학술사업에 관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안은주 실장은 “영인본 제작과 학술자료 구축, 전시 교육자료 보급과 기증 등을 계속하며 한글고전소설에 대한 홍보와 전주한지 산업 활성화에 기여하도록 전 직원과 함께 땀흘리겠다”고 말했다.
▒ 안준영 완판본문화관 관장
“가장 전주다운 유산 완판본, 널리 알리는 게 목표”
“전주는 기록문화란 소중한 자산을 보유한 도시입니다. 가장 전주다운 유산인 ‘완판본’의 의미를 살리고 널리 알리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안준영(62·사진) 완판본문화관 관장은 15일 인터뷰에서 “우리 문화관의 의미는 과거 전주만의 기록유산을 미래와 연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 관장은 목판에 글과 그림을 새기는 판각가(板刻家)다. 경북 청도 출신인 그는 스무 살 때쯤 해인사에 들렀다가 고려대장경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후 대장경문화학교와 이산책판박물관 등을 세워 목판 문화유산의 복원과 판각·고인쇄 분야 전문 인력 양성, 전시 등을 위해 힘써 왔다.
2006년 전주에서 열린 ‘용비어천가’ 목판 복원 기념식을 계기로 2년뒤 ‘전주목판서화관’을 세워 문화 활동을 이어오다 2017년 완판본문화관의 운영을 맡았다. 안 관장은 3년 전 ‘심청전’ 목판 복원의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떠올렸다. 판각을 가르쳤던 시민들과 함께 10년간 땀을 흘린 끝에 만들어낸 성과였기 때문이다.
“전라감영 복원이 곧 완성됩니다. 조선시대 출판의 큰 축을 맡았던 전라감영과 더불어 전주한지산업지원센터 등과 앞으로 경쟁력 있는 작업을 해나갈 계획입니다.”
더불어 안 관장은 과거 경상감영에서 만들었던 ‘동의보감’의 목판 복원을 대구시와 함께 추진할 뜻도 밝혔다. 그는 당시 의술과 애민정신을 알리는 것은 물론 동서화합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안 관장은 “목판에 새겨진 기록문화의 대전제인 ‘나눔’을 이어가는 활동을 지속하겠다”며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관’의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다짐했다.
전주=글·사진 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