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 원격 운영했더니… 학생들 의견 개진 더 활발

입력 2020-06-15 04:05
사진=연합뉴스

“저희는 n번방 사건 하기로 했어요.” “우리는 강호순이야.” “우리도 n번방인데 겹쳐도 되나요?” “겹쳐도 되는데 보고서는 개인이야!”

여고생 16명과 교사 1명이 참여하는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선 조별 과제를 정하기 위한 대화가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학생들이 담당할 사건을 나눈 뒤에야 채팅방이 잠잠해졌다. 학생들은 다시 4명씩 4개 소그룹으로 쪼개져 저마다 조사한 내용을 공유했다. n번방 담당 그룹은 “개인정보 유포를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 “피해자 지원이 필요하고 남녀 싸움으로 주제가 변질돼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냈다. 연쇄살인마 강호순을 맡은 학생들은 그가 ‘쾌락형 살인마’라는 분석에 대해 한참을 토론했다.

지난 10일 찾은 경북 구미여고에서는 오프라인으로 하던 동아리 활동을 원격으로 전환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 학교는 코로나19로 개학이 연기되고 원격수업이 진행될 때도 동아리 80여개가 정상 운영됐다. 오히려 과거보다 더 활성화됐다는 평가다. 등교가 이뤄진 현재는 온·오프라인 융합을 시도하고 있다.

동아리 구성원 모집부터 원격으로 이뤄졌다. 동아리 대표가 동아리를 홍보하는 영상을 만들어 학교에 공유하면 관심 있는 학생이 댓글로 지원했다. 활동은 단체 채팅방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동아리 전체 단톡방에서 주제를 정하고 소그룹으로 나눠 보고서를 작성하고 다시 전체 단톡방에 공유하는 식이다.

‘줌’ 같은 화상회의 시스템을 활용해 발표를 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발표 자료를 만들어 화상회의 시스템에 공유한다. 지도교사는 출결과 전체적인 방향만 설정해주고 나머지는 학생 자율로 진행된다. 학생 자율이 강조되다보니 독특한 주제들이 가능했다. 아치형 교각과 발바닥 굴곡을 비교 분석하는 활동부터 창문에 놓인 빵이 썩는 과정 등을 탐구하기도 했다.

교사들은 원격 동아리의 의사소통 흐름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 오프라인에선 주도적인 학생 몇 명이 결정하고 다른 학생이 따르는 상황이 많았다. 온라인에선 다른 학생의 생각을 따라가기보다 자유롭게 자신의 주장을 펴는 경향이 더 뚜렷하게 자주 나타났다. 또 집에서 편하게 실시간으로 검색하며 대화하다보니 토론 수준이 높아지고 부정확한 정보를 말하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어 대화와 활동이 더 풍성해졌다고 한다.

김미옥 수학 교사는 “수학 동아리라면 수학을 잘하는 아이가 키를 쥐지만 원격에선 양상이 달랐다”며 “처음에는 원격 동아리에 반신반의했지만 지금은 그 효과를 목도하고 있다. 온·오프라인이 융합했을 때 어떤 효과가 나타날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구미=이도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