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우리는 끝이 없는 전쟁의 시대를 끝낼 것”이라며 “대신 (우리는) 냉철하게 미국의 필수적인 이익을 지키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많은 사람이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오랜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미군의 책무가 아니다”며 “우리는 세계 경찰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뉴욕주에 위치한 미 육군사관학교 웨스트포인트 졸업식 연설에서 이같이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책무 관련 발언은 북한이 도발 수위를 높이고, 독일 주둔 미군에 이어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나와 주목된다. 주한미군을 포함한 해외 주둔 미군 감축을 대선용 카드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더 힘을 얻게 됐다는 분석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주독미군 9500명을 감축할 것을 이미 국방부에 지시했다는 보도가 나왔고, 지난 11일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인 리처드 그리넬 전 독일 주재 미국대사가 독일 일간 빌트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독일, 한국, 일본,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에서 미군을 데려오기 원한다”고 밝혀 동맹국들에 큰 충격을 안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우리의 적들에게 알리겠다”면서 “우리 국민이 위협받는다면 우리는 결코 행동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최근 미국과 한국에 비난 수위를 높이는 북한을 향해 올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도발을 시도할 경우 강력 대응하겠다는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육사 졸업식에서 연설한 것은 취임 후 처음이다. 이번 웨스트포인트 졸업 연설은 흑인 사망 항의 시위를 둘러싸고 트럼프 대통령과 군 수뇌부 간 갈등이 최고조로 달한 상황에서 이뤄져 특히 관심을 모았다.
시위 진압을 위한 대통령의 군 동원 방침에 항명했던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과 대통령의 세이트존스교회 방문 시 동행한 것에 대해 “가지 말았어야 했다”고 사과한 마크 밀리 합참의장 등 ‘투톱’은 불참했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은 218년 웨스트포인트 역사상 첫 흑인 교장에 취임한 대릴 윌리엄스 중장의 안내로 교정에 들어섰으며, 연설 후에는 임관하는 흑인 졸업생도 대표로부터 칼을 선물로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30분간 진행된 연설에서 노예제도 타파를 위해 싸웠던 육사의 유산을 거론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남북전쟁 당시) 노예제의 악습을 철폐하기 위해 피로 물든 전쟁에 나가 싸우고 승리한 남성들과 여성들을 우리에게 제공해준 것도 이 학교(육사)였다”고 말했다. 또 1960년대 흑인민권운동 시절 육사 생도들이 흑인 분리정책의 끔찍한 부당함을 종식하는 데도 최전방에 섰다고 언급했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반된 군심을 끌어안고 성난 흑인 민심을 달래기 위해 이번 육사 연설을 활용했다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는 육사 밖에서는 수백명의 시위자들이 ‘사관생도들은 소품이 아니다’ ‘흑인 목숨도 중요하다’ 등의 피켓을 들고 항의 시위를 벌였다고 전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