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소리 못 읽고, 소리 없이 퇴장한 ‘더킹’

입력 2020-06-15 04:02
김은숙 작가의 SBS 금토극 ‘더 킹: 영원의 군주’가 지난 13일 종영했다. 드라마는 시대착오적인 대사와 설정, 불친절한 전개, 노골적인 PPL로 몸살을 앓았다. 사진은 이곤(이민호·왼쪽)과 정태을(김고은)의 모습. SBS 제공

스타작가 김은숙의 SBS 금토극 ‘더 킹: 영원의 군주’가 소리 없이 종영했다. 입헌군주제의 대한제국과 21세기 대한민국을 넘나드는 판타지 로맨스를 그린 이 작품은 시대착오적인 대사와 설정, 불친절한 전개, 노골적인 간접광고(PPL)로 몸살을 앓다 막을 내렸다. 첫 주 11%대였던 시청률은 회를 거듭할수록 하락했고 최종회는 8.1%를 기록했다.

시대착오적 대본에…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분노

‘김은숙표 신데렐라 문법’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지 못한 채 여성을 처절한 ‘을’로 그렸다. 대한민국에서 범인을 때려잡던 형사 정태을(김고은)은 평행세계로 넘어가면서 ‘백마 탄 황제’ 이곤(이민호)에게 의존하는 캐릭터로 퇴행했다. 시청자는 왜 여성이 절대적 보호자에 의지하는 나약한 서민이 돼야 하냐고 물었다. 특히 곤의 일방적인 키스 장면 등에선 김 작가의 성적 위계가 여실히 표출됐다.

여성 총리 구서령(정은채) 캐릭터는 더욱 심각하다. 황제의 관심을 태을에게 빼앗긴 이후 “어려? 예뻐?” “대체 날 뭐로 이긴 거냐” 등의 대사는 한숨이 나온다. 여성과 여성의 대결 구도를 설정하고 ‘어리고 예쁜’ 여성을 샘내는 방식은 구시대적인 여성 혐오다.

그래서, 평행세계가 뭔데?

드라마는 1994년 대한제국과 2019년 대한민국을 번갈아 보여주지만 전개가 불친절했다. 대한제국은 가상세계이고 왕이 존재하는 입헌군주제다. 하지만 고층건물이 솟아있고 자동차가 다니는 대한제국의 풍경은 대한민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청자는 혼란에 빠졌다.

이 과정에서 김 작가의 세계관과 시청자의 요구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김 작가가 운명을 바꾸는 공간에 담긴 메시지에 주력하다 보니 시청자는 방대한 세계관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갑자기 튀어나온 로맨스까지 받아들여야 했다. “저 둘은 왜 갑자기 사랑에 빠진 것이냐”는 시청자의 원성은 당연하다.

그동안 김 작가와 여러 차례 호흡을 맞췄던 이응복 감독의 부재가 작품 완성도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두 사람은 ‘미스터 선샤인’ ‘도깨비’ ‘태양의 후예’ 등을 함께 했다. 하지만 ‘더 킹’부터 김 작가는 독자노선을 택했다.

“배우가 영업사원이야?” 조롱받은 PPL

PPL은 줄곧 노골적이었다. 곤은 태을과 통화하며 “놀랐어. 영이(우도환)가 골라 온 커피가 황실 커피랑 맛이 똑같아. 첫맛은 풍부하고 끝맛은 깔끔해”라고 말했다. 통화 내내 그의 손에 들린 커피가 화면에 선명히 비쳤다. 잠복근무 중인 두 형사는 라면을 먹다가 별안간 김치 한 봉지를 손에 들기도 했다. 치킨, 휴대전화, 건강식품, 차량 등 한 회에 무려 7개 상품이 등장한 때도 있었다.

PPL은 제작비 감당을 위한 필수 요소다. ‘더 킹’은 회당 20억~25억원 선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의 시청자는 PPL의 중요성을 안다. 때문에 “하지 마라”가 아닌 “적당히 하라”고 요구하지만 이마저도 충족시키지 못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