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 “남북 정상, 다시 깜짝 만남으로 위기 돌파구 마련을”

입력 2020-06-15 04:06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가 지난 10일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문 특보는 지난 2018년 5월 판문점에서 열린 깜짝 정상회담처럼 남북 정상이 원포인트 회동을 해 문제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윤성호 기자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인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는 지난 10일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최근 남북 관계가 급격히 얼어붙은 원인과 전망을 풀어냈다. 문 교수는 “남북 정상이 2018년 5월 판문점에서 깜짝 정상회담을 통해 북·미 정상회담 불씨를 살린 것처럼 이번에도 원포인트로 만나 돌파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북한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와 개성공단 철거 등 추가 조치를 통해 우리 정부를 어려움에 빠뜨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이지만 남북 관계는 도돌이표다.

“지금쯤 남북 관계가 정상화되고 평화와 통일로 이어지는 과정에 들어섰어야 정상이다. 6·15 공동선언 직후 “평화가 다가온 것 같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 말씀에 공감을 많이 했다. 하지만 남북 관계 변수를 비롯해 동북아·국제 질서 역동성에 영향을 받으면서 한반도 평화가 신기루처럼 왔다가 사라졌다. 문재인 대통령 집권 이후 ‘반짝’ 평화가 왔지만 최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우리를 적(敵)으로 규정하는 등 상황이 악화됐다. 상황을 반전시키기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정부가 최선을 다해 현 상황을 바꿔야 한다.”

-김 제1부부장이 직접 대남 비난을 주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김 제1부부장 담화문을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그는 담화문에서 ‘지금과 같은 때에 적대행위가 용납된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북한 최고지도부가 코로나19 사태로 긴장하고 있는데, 대북전단 살포라는 체제 교란 행위를 우리 정부가 방치했다는 얘기다. 북한은 두 정상이 판문점선언을 통해 전단 살포를 중단키로 했는데, 왜 아직도 합의를 지키지 않느냐는 주장을 하고 있다. 우리 정부를 향해 배신감과 실망감, 분노를 표현하고 있다고 본다. 우리 정부가 합의를 이행하지 못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북한의 진짜 속내도 있을 것 같은데.

“김 제1부부장이 직접 대남 비난을 이어간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2018년 남북 관계 개선에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이 김 제1부부장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 특사로 내려와 한반도 정세 변화의 물꼬를 텄다. 또 9·19 평양공동선언에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명시된 것도 김 제1부부장의 강력한 지지 때문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결과만 놓고 보면 2018년 이후 남북 관계에 진전이 없다. 김 위원장 통치 스타일이 성과에 따라 보상과 처벌을 내린다는 점인데, 누군가는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다. 개인적으로 김 제1부부장이 남북 관계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 데 대한 자아비판을 대남 비난 성명 형식을 통해 주민들에게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북전단 살포를 ‘엄벌하겠다’는 정부 발표에도 탈북민 단체들은 계속하겠다는데.

“공동체 이익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부분적으로 유보할 수도 있다는 게 우리 사회의 오랜 전통이다. 한국이 코로나19 방역에 성공한 것도 개인 자유보다 공동체 이익을 우선시했기 때문이다. 대북전단 살포가 군사적 충돌로 이어진다면 남북이 입을 피해가 극심하다. 접경지역 주민들의 생존권도 염두에 둬야 한다. 탈북민 단체가 이를 유념해줬으면 좋겠다.”

-남북 연락 채널이 다 끊겼다. 북한의 추가 조치가 있을까.

“김 제1부부장이 전면에 나섰다는 것은 이미 계획이 다 준비됐다는 의미다. 김 위원장 집권 이후 북한은 자신들이 언급한 것은 반드시 이행한다. 빈말을 하지 않는다. 북한이 연락사무소와 개성공단 철거 등을 언급한 만큼 여러 돌발 상황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정부를 어려움에 빠뜨리려고 할 것이다. 경제 부분에 적용된다는 김 위원장의 정면돌파 전략이 남측에 먼저 적용되는 형국이다.”

-보건 협력으로 남북 관계를 개선하자는 우리 정부 제안에 북한이 응답하지 않고 있다.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의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발언을 인용해 설명하고 싶다. 우리 정부가 지나치게 국내 여론과 미국 눈치를 보면서 대북 교류·협력을 시작조차 못하고 있다는 게 정 부의장의 주장이다. 방역·보건 협력을 시작으로 남북 관계를 개선시키겠다는 문 대통령의 구상은 좋다. 다만 말은 행동으로 이어질 때 의미가 있다. 문 대통령의 구상과 이를 받아들이는 북한 당국 간 괴리가 상당한 것 같다.”

사진=윤성호 기자

-남은 임기 내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은.

“당연히 해야 한다. 남북이 원하는 것은 결국 평화다. 핵무기 없고, 평화롭게 공동 번영하는 한반도를 만들자는 것이다.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에 잘 나와 있다. 그런데 두 정상이 약속만 하고 끝내면 안 된다. 이행하지 못한 게 많다. 다행히 아직은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 사이에 신뢰의 끈이 유지되는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의 직접적인 문 대통령 비난은 아직 없지 않나. 차기 대통령이 문 대통령만큼 남북 문제에 관심을 갖기는 어렵다. 김 위원장으로서도 문 대통령이 최적의 상대다. 2018년 5월 판문점에서 이뤄진 깜짝 정상회담처럼 두 정상이 원포인트로 만나 우선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이후 김 위원장이 약속한 대로 서울을 답방한다면 남북 관계에 큰 반전을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문 대통령도 북에 구체적으로 줄 무언가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가능한가.

“북의 최고지도자가 가능하지 않은 일을 문서로 약속했겠나. 여건이 형성되면 올 것으로 생각한다.”

-북·미 관계도 교착상태에 빠졌다. 올 11월 미 대선도 있는데 돌파구가 마련될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주도의 3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는 어렵다고 본다. 코로나19와 흑인 사망 항의시위 등으로 국내정치 상황이 좋지 않다. 비핵화에 따른 상응조치를 두고 북한이 엄청난 양보를 한다면 또 모를까. 하지만 북한이 미국의 ‘선 핵폐기, 후 보상’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은 없기 때문에 대선이 임박한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만날 확률은 낮다. 반면 북한이 7차 핵실험 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등 미국 본토에 위협이 되는 행동을 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적 보복에 나설 수도 있다. 그게 대선에 유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나.

“미국에 ‘북한을 악마화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자’고 말해야 한다. 미국이 보고 싶은 대로 북한을 보면 비핵화 협상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상기시켜야 한다. 북한은 핵·미사일 모두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선 핵폐기, 후 보상’이라는 미국의 백지어음을 덜컥 받겠나. 받을 수 없다. 아울러 대북 제재는 북한 비핵화를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고 지속적으로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스냅백(약속 이행이 없을 경우 철회)을 전제로 한 조건부 제재 완화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식으로 말이다.”

-문재인정부 대북 정책에 점수를 준다면.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는 데는 상당히 성공한 것 같다. 9·19 군사합의 덕에 비무장지대와 서해상에서의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이 최근 몇 년간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또 매년 국방예산을 8% 가까이 올리며 신형 무기들도 도입했다.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을 두고 미국과 이견을 보이고 있지만 한·미동맹도 잘 유지하고 있다. 다만 평화를 만들고 구축하는 동시에 남북 교류 및 협력을 확대하는 데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해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북·미 비핵화 협상이 중단되고 미·중 갈등까지 심화되면서 북한과 미국을 다루는 데 어려움이 크다. 이런 구조적 제약을 극복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미·중 갈등 속 우리 외교 전략은 무엇인가.

“우리 국익에 따라 외교 전략을 짜야 한다. 동맹인 미국이 전략적 동반자 관계인 중국보다 훨씬 중요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이 자신들 편을 들라고 지나치게 요구할 경우 이를 거부할 수도 있어야 한다. 중국이 과거 사드 보복처럼 우리 정부를 압박하며 편들기를 강요하면 중국에 등을 돌릴 수도 있어야 한다. 우리 생존과 번영을 담보하는 데 최우선으로 초점을 맞춰 외교 전략을 짜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나라’라는 이수혁 주미대사의 최근 발언은 우리가 더 이상 약소국이 아닌 만큼 충분히 선택을 할 권한이 있다는 말이다. 일부에서 이 발언을 문제 삼는데, 뭐가 잘못됐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만난 사람=남혁상 정치부장, 정리=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