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최모(30)씨는 평소 축구와 사이클, 헬스 등을 즐기는 운동 마니아다. 지난해 철인3종 경기를 준비하면서 하체 근력을 키우고자 퇴근 후 매일 저녁 스쿼트와 스피닝(실내 고정 자전거)을 했다. 거의 선수급 훈련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사타구니 쪽이 저릿하고 불편해졌다. 그의 진단명은 운동을 많이 해 생기는 ‘고관절(엉덩관절) 충돌증후군’이었다.
최씨 같은 청·중년층 운동 마니아들의 엉덩관절 건강에 경고등이 켜졌다. 무리한 운동이나 잘못된 자세 탓이 크다. 고관절 충돌증후군(혹은 대퇴비구 충돌증후군)은 엉덩관절을 이루는 허벅지뼈(대퇴골)나 골반뼈 일부가 돌출돼 서로 정확히 맞물리지 않고 충돌해 염증과 통증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증상이 심해 수술하는 사례도 최근 늘고 있다.
현재 전체 고관절증 진료 환자 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로 집계되지만, 이 가운데 순수한 고관절 충돌증후군 환자 데이터는 별도로 잡히지 않는다. 이 때문에 국내 고관절 충돌증후군 환자 규모와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긴 힘들다. 다만 개별 의료기관 방문 환자 수로 가늠할 순 있다.
서울아산병원 정형외과 윤필환 교수팀이 2014년부터 최근까지 고관절 충돌증후군으로 수술 혹은 시술받은 환자 97명을 분석한 결과, 남성이 여성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연령별로는 20대(45명) 30대(25명) 40대(13명) 50대(8명) 10대(6명) 순이었다. 10명 가운데 8명(85%)가량이 20~40대였다.
윤 교수는 15일 “아시아인은 고관절 충돌증후군을 일으키는 엉덩관절 뼈 이상이 드물다는 그간의 통설과 달리 국내에서도 고관절 충돌증후군, 그리고 그로 인해 일찍 관절염이 진행돼 일상생활에 지장받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추세다. 비만 인구가 늘고 있는 것도 한몫 한다”고 설명했다. 예전에는 중년 이후 뼈의 퇴행성 변화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엔 격렬한 스포츠 활동을 즐기는 20·30대에서도 발생이 많아지고 있다는 게 윤 교수의 설명이다.
고관절 충돌증후군은 볼과 소켓처럼 서로 맞물리는 허벅지뼈의 머리부분(대퇴골두)과 골반뼈 끝부분(골반골 비구)이 선천적으로 다르게 생겼거나 혹은 후천적으로 변형된 게 원인이다.
윤 교수는 “둥글고 매끈한 공 모양의 대퇴골두가 불룩하게 튀어나와 권총 손잡이처럼 타원형으로 변형되거나 골반뼈 끝 부분이 앞으로 돌출돼 보통의 경우보다 대퇴골두를 너무 많이 덮으면 움직일 때 마다 충돌을 일으키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엉덩관절을 과도하게 굽히거나 비트는 동작을 반복할 경우 부드럽게 맞물려야 할 대퇴골두와 골반골 비구가 부딪혀 통증을 유발한다. 통증이 있는데도 잘못된 자세나 과격한 운동이 지속되면 두 뼈의 충돌이 반복돼 가장자리 연골이 찢어지는 ‘비구순 파열’로 이어지기도 한다. 연골 손상이 악화되면 젊은 나이에 퇴행성 고관절염으로 고생하거나 심하면 인공관절을 해야 될 수도 있다.
사이클이나 스쿼트 축구 야구 킥복싱(발차기) 등 고관절을 과도하게 굽히거나 뒤트는 운동은 고관절 충돌증후군을 초래하기 쉽다. 유소년기에 희귀한 고관절 질환을 앓아 뼈의 형태가 불규칙하게 된 경우에도 나중에 충돌 증후군이 생길 수 있다.
주목할 것은 국내 청·중년층 5명 가운데 1명은 이런 고관절 충돌증후군 위험이 있는 뼈를 가졌다는 점이다. 2015년 윤 교수팀이 평소 통증 등 증상이 없었던 18~50세 200명의 고관절을 조사한 결과 19.3%가 충돌증후군이 생길 수 있는 뼈 이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 참여자들은 평균 33세로 비교적 젊었고 과거 고관절 질환을 앓은 적이 없는 이들이었다. 고관절 뼈 이상 비율은 남성(30.8%)이 여성(12.6%) 보다 높았다.
이처럼 고관절 충돌증후군을 야기할 수 있는 뼈 형태를 가진 사람들은 운동 방법이나 수준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고관절의 충돌은 쪼그려 앉거나 무릎이 가슴에 닿을 정도로 엉덩관절을 과도하게 굽히는 오리걸음, 고관절을 안쪽으로 많이 꺾거나 돌리는 요가 동작 등에서 일어날 수 있다. 스쿼트 운동 시 바닥에 주저앉을 정도로 앉았다 일어나는 동작을 반복할 경우 연골 손상을 초래할 수 있다. 사이클처럼 허리를 많이 굽히고 타는 자전거도 마찬가지다.
고관절 충돌이 잦으면 앞쪽 사타구니에 찌르는 듯한 통증이나 무언가 걸리는 듯한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충돌이 생기는 고관절을 가진 사람들은 바닥에 앉아있는 걸 불편해 한다. 양반다리를 하더라도 남들처럼 무릎이 바닥에 닿지 않거나 쪼그려 앉을 때 뒤꿈치를 들지 않으면 그런 자세 취하기가 힘들다. 자동차나 자전거를 타고 내릴 때나 장시간 비행기 탑승 후 엉덩관절 부위가 뜨금한 경우도 있다. 심한 경우 의자에 앉을 때 두 다리를 모으기 힘들어 어쩔 수 없이 다리를 벌려 앉는 것이 편한 사람도 있다. 이런 문제와 함께 엉덩관절에 반복적인 통증이 있을 경우 X선 촬영으로 뼈 모양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통증이 있다 하더라도 충돌을 유발하는 동작을 피하고 온찜질, 약물치료 등을 병행하면 수술 없이도 회복될 수 있다. 하지만 관절 연골이 찢어지거나 관절염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크면 수술이 필요하다.
과거에는 수술할 때 근육을 크게 절개하거나 고관절을 인위적으로 탈구시켜 충돌 부위를 제거했다. 수술 후 회복이 느리고 합병증 위험이 컸다. 하지만 최근에는 피부나 근육 절개 없이 복강경 수술처럼 하는 최신 고관절경 수술법이 도입돼 이런 부담을 덜 수 있게 됐다. 엉덩관절 주위 허벅지에 직경 5~6㎜ 구멍을 서너 곳 낸 다음 내시경과 특수 기구를 넣어 파열된 부분을 봉합하고 돌출된 뼈를 다듬는 방식이다.
윤 교수팀은 75명의 환자에게 이런 방식의 수술을 시행한 결과, 대다수 환자에서 더 이상 충돌이 발생하지 않고 증상이 호전됐다는 연구결과를 최근 국제관절경수술학회지에 발표했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