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도 뚫었는데… ‘안개 벙커’에 막힌 KLPGA

입력 2020-06-15 04:07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S-OIL 챔피언십 출전 선수들이 14일 제주 애월읍의 제주 컨트리클럽 연습용 그린에서 자욱한 안개에 휩싸여 대회 재개를 기다리며 몸을 풀고 있다. 대회는 이날 폭우·안개의 악천후로 2라운드 도중에 취소됐다. KLPGA 제공

14일 오후 2시 제주 애월읍의 제주 컨트리클럽(파72·6336) 1번 홀(파4) 주변은 초대형 가습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자욱한 안개가 가득했다. 단 몇 걸음만 걸어가도 원래 있던 자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의 가시거리. 오전부터 퍼팅 그린에 나와 삼삼오오 몸을 풀던 선수들 사이로 “이렇게 오래 기다려본 건 처음”이라는 푸념도 나왔다. 그중 한 선수가 퍼팅한 공은 몇 초 만에 안개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S-OIL 챔피언십(총상금 7억원)이 14일 낙뢰를 동반한 폭우·심한 안개 등 궂은 날씨의 영향으로 2라운드 진행 도중 취소됐다. 대회가 기상 탓에 중도에 취소된 건 KLPGA 역사상 이 번이 두 번째다. KLPGA는 36홀까지 경기가 진행되지 않을 경우 공식 대회로 인정하지 않는다.

최진하 KLPGA 경기위원장은 “2라운드 종료까지 약 4시간이 필요한데 오후 3시에도, 다음날인 16일에도 안개가 걷힐지 보장되지 않았다”며 “경기위원회 선수분과위원회 골프장 대행사가 함께 회의해 결국 대회를 1라운드로 종료하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애초 이번 대회는 12~14일 3일 간 3라운드(54홀) 대회로 치러질 예정이었다. 12일 1라운드는 정상적으로 진행됐지만, 이튿날부턴 날씨가 발목을 잡았다. 13일엔 안개와 낙뢰, 폭우 등으로 출발이 5시간 지연돼 일몰까지 120명의 출전 선수 중 절반만 2라운드를 마쳤다.

14일에도 날씨는 갤 기미가 없었다. 자욱한 안개에 시야 확보가 100m도 안됐고, 오전 10시부턴 낙뢰까지 이어졌다. 벙커 일부가 폭우에 유실되기까지 했다. 오전 7시 시작으로 예정됐던 2라운드 잔여 경기는 오후 3시가 넘어서까지 궂은 날씨가 계속돼 재개되지 못했다. 결국 조직위는 어쩔 수 없이 대회 취소를 결정했다.

KLPGA 대회가 공식 대회로 인정받지 못하고 중도에 취소된 경우는 이번이 두 번째다. 직전에 취소된 대회도 2012년 제주에서 열렸다. KLPGA 관계자에 따르면 2012 MBN 김영주 골프 여자오픈은 1라운드를 마친 뒤 심한 강풍 탓에 취소됐고, 상금과 1라운드 기록은 KLPGA 공식 기록에 포함되지 않았다.

공식 대회로 성립되지 않아 이번 대회는 우승자가 없다. 상금도 총 상금의 75%만을 1라운드 순위대로 선수들에 배분한다. 규정에 따라 1라운드에서 8언더파 64타를 쳐 1위에 올랐던 최혜진(21)이 9450만원을, 공동 60위 선수가 약 100만원을, 61~80위까지 선수들이 약 10만원을 받게 된다.

올해 참가한 5번째 대회에서 시즌 첫 우승에 도전했던 최혜진은 우승컵을 들어 올릴 기회도, 생애 첫 한 대회 2년 연속 우승 기록을 쓸 기회도 놓치게 됐다. 내년 15회 대회에서 우승하더라도 올해 1라운드가 진행돼 ‘연속 우승’으로 공식 인정받지 못한다. 13일 2라운드 경기에서 8언더파 64타 신바람으로 1위에 올랐던 김지영(24)도 3년 만의 우승 기회를 다음으로 미루게 됐다.

이 대회는 지난해에도 자욱한 안개 때문에 경기를 치를 수 없어 36홀 대회로 축소한 바 있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도 대회를 개최했지만, 또 다시 기상 문제 탓에 대회가 취소되는 아쉬움을 맛봤다.

제주=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