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슨 적이든 적을 갖고 있다/ 오늘의 적도 내일의 적처럼 생각하면 되고/ 오늘의 적으로 내일의 적을 쫓으면 되고/ 이래서 우리들은 태평으로 지낸다.”
김수영(1921~1968)의 시 ‘적1’의 일부다. 생애의 절반을 일본제국 신민으로 살았던 그는 글을 쓸 때 먼저 일본어로 쓴 뒤 우리말로 번역했다고 한다. 또 6·25전쟁 때 미처 피난하지 못해 북한군에 징집됐던 그는 겨우 탈출한 후에는 서울에서 인민군 포로로 붙잡혀 거제도 수용소로 보내졌다. 그는 자신이 살았던 저 혼란스러운 시대와 계속 불화했고, 그 피로감을 ‘오늘의 적도 내일의 적처럼 생각하는 우리’라고 표현했다. 김철 연세대 명예교수는 “김수영은 ‘빨갱이’와 ‘친일파’를 씻어냄으로써 흠 없는 순결에 이르고자 하는 민족·국가의 욕망에 가차 없이 침을 뱉었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또 “삼팔선은 ‘빨갱이’가 지키고, 동해는 ‘친일파’가 지킨다”고 했다. 전후 한국 사회에서 넘어서는 안 됐던 두 개의 정신적 경계선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말처럼 ‘반공’과 ‘반일’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강고한 규범이었다.
김수영이 세상을 떠난 지 52년이 지났다. 뭐가 달라졌을까. 현재 한국 사회 권력 구도를 보면 ‘빨갱이’ ‘종북’이란 혐오 표현의 위력은 매우 미미해졌다고 할 수 있다. 삼팔선과 반공은 더 이상 넘지 못할 선이 아닌 것이다. 북한의 왕조 정권이 쏟아내는 막말과 비난에 현 정부가 전전긍긍하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친일파’ 낙인의 위력은 지금도 여전하다. 일제에 부역했던 진짜 친일파가 거의 다 세상을 떠났음에도 그러하다. 친일파보다 훨씬 어감이 센 ‘토착왜구’란 최신 혐오 표현까지 등장해 널리 쓰인다. 현 집권층은 보수 세력과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뿌리를 친일파로 본다. 친일파는 곧 독재, 반민주, 수구 기득권 세력이라는 등식이다. 그래서 뭐든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것이 나오면 싸잡아 친일 혐의를 씌우고 한껏 증오한다.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과 정의기억연대 사태를 보자. 쏟아지는 의혹과 비판을 여당 의원들은 “친일·반인권·반평화 세력의 부당한 공세”라고 규정했다. 지고한 ‘반일 민족주의’ 가치를 열심히 실천해온 우리 편의 사소한 흠을 잡아 공격하는 이들은 모두 척결해야 할 친일파라는, 지극히 이분법적인 인식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죽창가’와 윤미향 의원의 ‘21대 총선은 한일전’ 구호, 현충원의 친일파 무덤을 파내자는 이수진 민주당 의원의 주장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단박에 공감하며 격렬한 증오심이 끓어오르는가, 아니면 피로감이 몰려오는가. 과거로만 내달려 복수와 한풀이에 몰두하는 정치가 나는 피곤하다. 이제는 좀 다른 방식으로 갔으면 좋겠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2006년에 만든 영화 ‘하나’는 사무라이의 원수 갚기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처절한 복수극도, 피가 튀는 액션 활극도 아니다. 아버지의 복수라는 버거운 소명을 등에 지고 괴로워하던 사무라이 소자에몬이 자기 식으로 짐을 내려놓는 이야기다. 누군가가 “넌 증오도 모르냐. 부끄럽지 않으냐”고 힐난하자 소자에몬을 응원하는 이웃집 여인이 대신 나서서 “사람마다 증오하는 법이 따로 있다. 그는 마음속에 있던 똥(증오)을 떡(좀 더 나은 것)으로 바꾼 것”이라고 반박한다.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데모 방식을 바꾸자”며 “한·일 학생들이 왕래하며 친하게 지내면서 올바른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고 했다. 적대감을 동력으로 하던 운동에서 벗어나 미래세대의 교류 속에서 해법을 찾자는 제안인데, 별 호응을 얻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천지우 정치부 차장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