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남 4녀의 맏이인 나는 부모님 기대와 달리 공부는 물론 잘하는 것이 없었다. 동생 돌보기, 집안정리와 청소에 최선을 다했지만 말썽꾸러기 동생들 때문에 집안은 늘 난장판이었다. 매일 듣는 부모님의 야단이 억울했지만 말 한마디도 못하고 속만 태웠다. 그러다 16세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새벽 5시만 되면 영어를 잘 못하시던 부모님은 나를 데리고 가게에 갔고 매사에 간섭과 야단을 맞으며 빨리 집에서 벗어나려고 결혼했다. 그런데 남편은 집안은 팽개치고 프로가 되겠다며 골프에 빠졌다. 혼자 식당일과 집안일에 지쳤지만 내가 좋아서 한 결혼이니 누구에게 하소연도 못했다. 결국 정신적·육체적으로 완전히 무너져 이혼했다.
어느날 고모가 ‘우리 동서가 예수님을 믿고 다른 사람이 됐다’며 사돈과 함께 찾아왔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느냐는 사돈의 질문에 ‘저는 성경공부 열심히 하고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고 있는데요’ 하는데 식은땀이 났다. 사돈이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는 부활’이라고 할 때 ‘증거’라는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아무 증거 없이 주문을 외듯 믿음생활을 한 내 모습이 보이는 순간 사도행전 2장의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말씀이 임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살리셨다면 예수님은 약속대로 오신 성자 하나님임이 확실했다. 예수님이 선명해지니 그동안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악한 죄가 딱 보였다. 하나님 아버지의 입장에서 이보다 큰 죄가 없었다. ‘아버지 어찌합니까’ 엉엉 울며 그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했다. 그러자 마음에 진정한 자유가 임하며 세상의 미련이 말끔히 사라졌다. 만나는 영혼들을 품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원망만 했던 부모님이 5남매를 위해 애쓰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그동안 못한 진짜 효도를 하고 싶어 포기하지 않고 복음을 전해 2년 만에 부모님은 주님 품으로 돌아왔고 바로 집을 오픈해 지체들이 함께 모여 매주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그후 아빠가 오랜 투병생활을 할 때도 매일 곁에서 예배를 드리고 목욕을 시켜드렸다. 아빠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지체들과 함께 치른 장례식은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천국 잔치가 됐다.
전도지, 팸플릿 등으로 식당 공간을 가득 채우고 찬양을 틀며 식사하러 오는 손님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리처드라는 손님은 우울증을 앓고 있었는데 올 때마다 복음을 전하며 주님처럼 섬겼더니 마음을 열었고, 그의 형인 로저가 찾아와 감사 인사를 했다. 신앙을 고민하던 로저는 부활의 복음을 받고 나와 환상의 콤비로 동역자가 됐다.
쟈쉬라는 분은 ‘저는 오늘 죽으면 지옥 갈 것 같아요’ 하며 답답해했다. 도저히 그냥 둘 수 없어 새벽 3시에 일어나 눈이 펑펑 내리는 산길을 고생고생하며 운전해 찾아갔다. 성령의 역사로 쟈쉬가 예수님을 영접할 때 흥분하고 감격해하던 그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또 식당 주변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노는 아이들에게 음료수와 과자를 주며 말씀을 암송시켰더니 너무 좋아하며 모여들었고 그 중에 예수님을 영접한 아이도 나왔다. 어느새 주위에서는 나를 ‘THE GOSPEL WOMAN’(복음 아줌마)이라고 불렀다.
생각할수록 부활의 증인으로 불러주신 하나님이 너무 감사하다. 죄에서 돌이킬 기회를 주시고 나를 끝까지 믿어주셔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맡겨주심에, 날마다 하나님 안에 거하게 하심에 깊이 감사드린다.
김소정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