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가상자산(암호화폐) 거래와 관련해 과세를 결정한 건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과세 원칙에서 출발한다. 암호화폐 투자를 통해 투기성 차익을 얻는 사례가 적지 않았지만 그동안 국내에서는 세금을 거둘 수 없었다. 암호화폐 과세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 등 다른 나라들은 일찍이 암호화폐 과세 방안을 마련해 세금을 부과해 왔다. 미국의 경우 암호화폐를 자산으로 간주하고 그 매매차익에 대해 ‘자본이득세(capital gain tax)’를 부과하고 있다. 한국의 양도소득세와 유사한 개념이다. 독일 역시 암호화폐에 과세한다. 다만 암호화폐를 1년 이상 보유하거나 거래 규모가 600유로(약 81만5400원)를 넘지 않으면 과세 대상에서 제외된다. 600유로 초과 암호화폐 거래에 대해서는 25%의 세율을 적용한다.
반면 스위스는 암호화폐를 재산세 과세 대상으로 포함할 뿐 개인의 암호화폐 매매차익 자체에 대해서는 과세하지 않는다. 일본은 암호화폐 매매차익을 양도소득으로 과세하지 않고, 복권당첨금이나 배당금, 강연료와 같은 기타소득(잡소득)으로 분류해 과세한다. 다만 기타소득 세율이 최대 55%나 되다 보니 일본에서도 탈세가 많은 게 문제점으로 거론됐다.
정부도 한때 암호화폐 거래의 기준시가 책정, 매매차익 계산 등이 복잡하기 때문에 과세 편의 차원에서 기타소득 적용을 고려했지만, 이런 요인 탓에 도입을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3월 이용자의 거래내역 등을 정부가 파악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양도소득 적용 쪽으로 무게추가 기울었다.
암호화폐를 자산으로 볼 경우 양도소득뿐 아니라 법인세나 상속·증여세 부과도 가능해진다. 법인이 암호화폐 투자해 매매차익을 남기면 법인의 다른 수익에 포함해 과세 대상이 된다. 다만 정부는 미국 일본 등과 마찬가지로 암호화폐에 대해 부가가치세는 부과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암호화폐에 대한 양도소득 적용을 두고도 여전히 보완해야 할 과제가 많다. 국내 200여곳의 암호화폐 거래소 가운데 국내 은행과 연계해 이용자의 실명 금융거래 기반이 구축된 거래소는 빗썸 등 4곳에 불과하다. 비트코인 등 다수의 암호화폐는 이들 거래소 비중이 큰 편이지만, 일부 암호화폐는 이들 거래소 비중이 낮아 과세 사각지대에 있다.
내·외국인 간 조세형평 문제도 있다. 현행 소득세법에서는 국제조세협약에 따라 내국인의 양도소득만 과세한다. 외국인의 암호화폐는 양도소득으로 적용할 수 없어 기타소득으로만 분류할 수 있다. 지난해 말 국세청이 외국인 고객의 소득과 관련해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에 800억원대 세금을 부과한 것도 기타소득을 적용한 것이었다. 하지만 양도소득과 기타소득의 세율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매매차익에 대해서도 납부할 세금이 달라지는 문제가 있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11일 “이번 세법 개정안에서 내국인과 외국인의 납세 의무를 규정한 소득세법 조문도 재정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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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