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을 두고 진보 논객 진중권 전 교수와 청와대 전현직 참모들의 신경전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진 전 교수가 대통령 연설을 원색 비난하자 현직 연설비서관까지 시를 통해 우회적으로 반박하는 등 신경전이 확산하고 있다.
문 대통령 연설문 논쟁의 발단은 진 전 교수가 지난 10일 국민의당 강연에서 “문 대통령은 남이 써준 연설문을 읽는 의전 대통령”이라고 비판하면서 시작됐다.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윤영찬 의원을 비롯한 청와대 참모 출신 인사들이 반박하는 등 논쟁이 이어졌다.
상황이 번지자 문 대통령의 ‘필사’인 신동호 청와대 연설비서관이 11일 페이스북에 자작시를 올렸다. 신 비서관은 ‘기형도의 빈집을 기리며’라고 밝히며 ‘빈 꽃밭’이라는 제목의 시를 썼다. 기형도 시인의 시를 변주해 “꽃을 잃고, 나는 운다…꽃을 피워야 할 당신이 꽃을 꺾고 나는 운다, 헛된 공부여 잘 가거라”고 적었다.
신 비서관은 시 서두에 “어느 날 아이가 꽃을 꺾자 일군의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아이는 더 많은 꽃을 꺾었고 급기야 자기 마음속 꽃을 꺾어 버리고 말았다”고도 썼다. 문재인정부를 연일 비판해온 진 전 교수의 비난을 우회적으로 반박한 것으로 해석된다. 신 비서관은 강원고 3학년 학생이던 1984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시인이다. 문 대통령 취임 이래 지금까지 연설비서관을 맡아 왔다.
청와대 관계자는 “진 전 교수가 이틀간 비판을 계속하자 신 비서관이 대응한 것”이라며 “대통령이 연설에 대한 철학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문 대통령은 연설문의 내용뿐 아니라 표현 하나까지 일일이 고치고 다듬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진 전 교수가 이런 과정을 무시하고 비판했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진 전 교수도 지지 않고 즉각 답시를 발표했다. 진 전 교수는 ‘빈 똥밭’이라는 제목, ‘신동호(비서관)의 빈 꽃밭을 기리며’라는 부제의 시에서 “어느 날 아이가 똥을 치우자 일군의 파리들이 아우성을 쳤다. 아이는 더 많은 똥을 치웠고 급기야 그들 마음속의 똥을 치워버리고 말았다”고 썼다. 신 비서관의 시를 비틀어 재차 반격한 것이다. 진 전 교수는 다른 글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내가 심하게 비판했어도 추석날 나한테 선물 보내 줍디다”라며 “그게 정권의 격조이고, 그게 대통령의 품격”이라고도 했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