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벗겨진 느낌이지만 꿈을 이뤘죠”

입력 2020-06-12 04:06
18일 개봉하는 영화 ‘사라진 시간’을 통해 영화감독으로 데뷔하는 배우 정진영. 그는 “처음이다 보니 부족함도 있지만, 최선을 다해 만들었다”고 했다.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조진웅씨가 시나리오를 보낸 지 하루 만에 출연하겠다는 답을 줬어요. ‘왕의 남자’ 이준익 감독님도 영화를 보고 ‘좋은 시나리오야’라고 말씀하셔서 제가 더 놀랐어요.”

오는 18일 개봉하는 영화 ‘사라진 시간’은 33년차 배우 정진영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감독 데뷔작이다. 그의 동료 영화인들로부터 시나리오에 대한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11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정진영은 “배우로서 평가 받는 것에 익숙하지만 이번엔 내가 만든 이야기로 평가받다 보니 발가벗겨진 느낌이 든다”고 털어놨다.

외피만 보면 이 영화는 전형적인 미스터리 스릴러다. 하지만 내용은 부조리극 같은 예술영화에 가깝다. 화재사건을 수사하던 형사 형구(조진웅)는 하루아침에 자신이 알던 세상이 사라지는 충격적인 상황을 마주한다. 교사 수혁(배수빈)과 그의 아내 이영(차수연)의 비밀을 조사하던 중 자신이 하루 만에 형사에서 교사가 된 것이다.

기묘한 꿈 같은 이 영화가 관객에게 낯설게 받아들여질 것을 알았다는 정진영은 “시나리오를 쓰고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보여주면 틀림없이 대중적으로 고치라고 할 것이고, 나도 그 말을 따를 것 같았다”며 “내가 원한 작품은 ‘모난 돌’ 같은 작품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슬픈 코미디’에 가까운 영화”라고 설명했다.

영화의 한 장면.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인생이 뒤바뀌는’ 영화를 통해 정진영이 던지고 싶었던 이야기는 “타인이 보는 삶과 자신의 인생 사이에 놓인 고독”이었다. 이 고민은 정진영이 17살 무렵 품었던 영화감독의 꿈을 40년이 지난 지금 풀어놓는 이유이기도 하다.

2016년 가장으로서 아이를 다 키운 정진영은 배우 인생을 돌아보게 됐다. 문득 어릴 적 꿈꿨던 예술가의 삶이 떠올랐다. 그는 “내게 예술가는 외롭더라도 도전하는 것이었는데, 어느 순간 안전한 시스템 속에 안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며 “망신당하더라도 도전하고 싶었다. 꿈을 이루게 돼서인지 촬영 한달간 3시간밖에 못 잤는데도 힘이 났다”고 전했다.

그렇다고 ‘사라진 시간’이 예술혼만 가득한, 난해한 영화라는 것은 아니다. 나열되는 3개 서사가 상징적으로 연결된다. 또 예측이 어려운 전개 사이사이에 유머가 녹아있다. 조진웅 배수빈 차수연 정해균 등 배우들의 맛깔난 연기도 힘을 보탠다. 열린 결말로 영화가 끝맺는 것에 대해 정진영은 “선문답 같이 느껴질 수도 있다. 다만 재밌는 얘기 끝에 ‘내 삶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남는 영화이길 바랐다”고 말했다.

정진영에 앞서 정우성 하정우 등 후배 배우들이 장·단편 연출에 도전한 사례가 있었다. 정진영은 “연출을 시도하는 후배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내가 감히 조언할 상황은 아니다”며 “각자 자기 색깔을 갖고 작품을 만들면 행복한 것 아니겠나”며 웃어 보였다. 다음 작품에 대해서는 “고민을 많이 해봐야 할 것 같다. 영화를 만드는 건 산에 오르는 것과 비슷하다. 우선 산꼭대기(영화 개봉)부터 오르는 게 목표”라고 답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