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의 과다한 공권력 행사로 사망했다. 이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가 미국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 혼란을 틈타 조직적인 범죄도 발생하고 있다.
특히 필라델피아를 타깃으로 삼았기에 우리교회 성도들이 운영하는 상점이 약탈과 방화의 대상이 됐다. 목회자 입장에서 그들을 보듬어야 할 목회적 책임이 있다. 아울러 ‘인종차별의 문제에 대한 교회의 공식 입장이 무엇이냐’는 한인 2세와 영어권 다음세대의 요구에 답변해야 할 책임도 있다.
현재 목회에서 중요한 것은 이민 1세대의 아픔을 달래주는 일이다. 몇 십 년 피땀 흘려 일군 일터가 약탈과 방화로 잿더미가 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그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평소 친구처럼 대했던 흑인이 약탈 때 가장 앞장서는 모습에 신뢰가 무너졌을 것이다. 그런 감정이 쌓이다 보니 모든 흑인이 도둑으로 보이고 흑인을 비하하는 말이 자녀 앞에서 불쑥 나온다. 반면 미국에서 태어난 2세들은 오랫동안 짓밟혀 온 유색 인종의 권리와 보이지 않는 불평등, 인종 차별 이슈에 분노한다.
이민 1세와 이곳에서 태어난 2세 사이에는 생각의 차이가 있다. 부모들은 흑인 거주지역에서 틈만 나면 물건을 훔치려는 범죄자들에 맞서 위험을 무릅쓰고 땀 흘려가며 돈을 벌어 자녀를 대학에 보냈다. 하지만 자녀는 부모 편을 들지 않는다. 흑인을 함부로 깎아내리는 부모가 조지 플로이드를 죽게 한 경찰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녀들은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흑인에 대한 인식을 습득한 부모세대가 바뀌길 바란다. 그들 앞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너희들이 옳다.” 미국이 직면한 이슈를 불구경하듯 하지 않고 약자 편에 서서 교회가 성경적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는 생각이 맞다. 사회적 불평등에 분노하고 눈물 흘리지 않는다면 더 이상 꿈을 가진 젊은이가 아닐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조차 다른 인종을 무시하는 행동이 수시로 나온다. 여전히 죄성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20년 넘게 인도네시아에서 무슬림 선교를 하다가 미국에 돌아와서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과격하고 공격적인 무슬림 지역에서 어떻게 선교했습니까.”
그러나 무슬림 대부분은 순박했다. 잘못된 선입견을 바로잡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흑인에 대한 편견도 마찬가지다. 내가 매일 보고 대하는 흑인의 모습이 전체 모습은 아니다.
폭도의 약탈과 방화로 피해를 본 성도들은 신앙으로 고난을 이겨내며 믿음의 본이 되고 있다. 교회는 함께 기도하고 피해에 따른 보험처리가 될 때까지 재정을 나누며 안전을 위해 힘쓰고 있다. 이민 생활에서 수차례 어려움을 겪은 신앙 연륜이 위기의 순간 성숙함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교회에선 이런 어려움을 거뜬하게 이겨내는 부모의 신앙을 자녀세대가 배울 수 있도록 믿음의 본으로 부각하고 있다. 비록 오랫동안 쌓은 것이 무너졌어도, 내 것이 빼앗기고 잿더미로 변했어도 여전히 감사하는 모습,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자녀세대가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자녀세대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인으로 담대하게 설 수 있다.
지금 미국 전역에서 외치는 구호는 ‘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이다. 나는 그 범위를 ‘모든 생명은 중요하다’(All Lives Matter)로 넓혔으면 좋겠다.
앞으로 미주의 2세, 3세가 이 땅의 주역이 됐을 때 흑인을 대하는 백인의 시선도, 아시아계를 보는 미국 주류사회의 시선도 달라지기를 기도한다. 정의를 위해, 약자를 위해 외칠 수 있는 지금의 미국은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시위를 틈탄 약탈과 범죄만 잦아든다면 2020년은 변화를 만들어내는 위대한 해가 될 것이다.
백운영 목사
약력=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 목회학석사, 풀러신학교 신학박사. 인도네시아 선교사, GP선교회 국제대표 역임, 현 로잔 글로벌이사회 멤버, 필라델피아 영생장로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