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의 땀방울이 검은 땟국물로 변해 마스크에 스몄다. 하차 작업만 5시간째다. 밀폐된 트레일러 내부에서 생수, 아기욕조, 선풍기 등 상품을 레일에 내리는 작업이 계속된다. 반복된 중량 작업에 숨이 가빠 답답함이 밀려온다. 이미 대다수의 다른 작업자는 마스크를 턱 아래까지 내린지 오래다. 6일 새벽 2시. 쿠팡 목천 물류센터의 모습이다.
상하차30분 “마스크, 못 쓰겠다”
쿠팡 부천 물류센터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한지 약 2주째. 그동안 물류센터 방역체계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지만, 직접 마주한 현장은 변화한 것이 없어 보였다. 안전화 돌려 신기가 이뤄졌고, 식당과 흡연장에서도 사회적 거리두기는 잘 지켜지지 않았다. 끝없이 쏟아지는 물량에 근무자는 제대로 된 휴식시간도 갖지 못했다. 작업자들은 불안감을 내비치면서도 “설마 내가 걸릴까”라는 마음으로 근무를 이어갔다.
지난 5일 저녁 7시께 충남 천안 쿠팡 목천 물류센터 앞. 20명가량의 사람들이 일용직으로 일하기 위해 등록 절차를 기다렸다. 이후에도 몇 분간 근로자를 실은 셔틀버스가 계속 물류센터로 들어섰다. 대다수가 20대~30대로 보이는 청년들이었다. 갓 10대 티를 벗은 듯한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이날 오후 7시부터 6일 오전 4시까지 오후조 근무를 신청한 기자도 이들 틈에 섰다. 핸드폰 반납과 발열 체크 등의 절차가 이어졌다.
마스크를 쓰고 입장을 기다리는 이들 사이에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바닥에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염두에 둔 듯, 줄 간격을 나눈 청색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관리자들은 선에 맞춰 서 줄 것을 요구하며 시간을 재촉했다. 하지만 이러한 거리두기는 물류센터 진입 순간부터 무너졌다. 건물 복도가 좁다 보니 사람 간 간격을 두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됐다. 안전화를 갈아 신을 때도 사람들과 다닥다닥 붙어 있어야 했다.
전 근무자들이 금방 벗어두고 간 듯 안전화에 온기가 그대로였다. 어떤 것은 땀에 젖어 축축함이 손에 그대로 느껴졌다. 신발을 갈아 신던 몇몇 이들은 “냄새 안 나는 것을 찾겠다”며 부지런히 다른 안전화를 골랐다. 근무자를 인솔하는 관리자의 무전에는 “물량이 밀리고 있으니 빨리 사람을 보내달라”라는 요청이 이어졌다. 이날 기자를 포함한 15명가량의 남성은 하차 업무로 배정됐다.
하차업무 목장갑 지원이 전부
하차 업무는 대형 트럭이 트레일러를 대면 2명가량의 근무자가 그 속으로 들어가 물건을 내리는 작업이다. 트레일러 내부까지 레일을 연장시킬 수 있는데, 이 레일 위로 상품의 바코드가 찍힌 부분이 윗면을 향하도록 일정하게 내려야 한다. 만일 바코드가 보이지 않거나, 하차 속도가 늦어지면 뒤에서 감독하는 고참 근로자의 따끔한 지적을 감수해야 한다.
일 특성상 트레일러 깊숙한 곳에서 종이박스, 비닐을 옮기다 보면 먼지들을 그대로 마시게 된다. 코로나19 감염은 둘째 치고 작은 먼지로 숨이 턱턱 막혀왔다. 트레일러에 실린 물건들도 에어서큘레이터, 수납장, 밥솥 등 고중량의 상품이 상당수였다. 더워진 날씨에 땀은 비 오듯 흘러내렸다. 같이 작업하던 한 20대 청년은 시작한 지 30분 만에 코를 덮고 있던 마스크를 턱까지 내렸다.
식사시간 40분… 알아서 쉬어야
공식적인 휴식은 약 40분가량의 식사시간뿐이다. 트럭 한 대가 끝나면 알아서 눈치껏 쉬는 게 암묵적 룰이다. 다음 트럭이 오기 전 약 1분 남짓한 시간 동안 수분 섭취나 화장실, 흡연 등 욕구를 해결해야 한다. 물량이 밀린 상황이라면 이마저도 불가능하다. 하차 작업 두어 시간 만에 목장갑은 검은 때로 얼룩이 졌고, 마스크 역시 침과 땀으로 뒤범벅이 됐다. 이날 쿠팡이 근로자에게 지급한 것은 목장갑 한 켤레가 전부다.
오후 10시가 되자 몇 개 조로 나눠 식사를 진행했다. 식사 전 손 소독제를 바르고, 착석 명부도 작성했다. 하지만 집단 감염의 위험성은 여전해 보였다. 인파가 몰리다 보니 1m의 줄 간격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식당의 4인용 테이블엔 칸막이가 설치돼 있었지만, 몇몇 근로자들은 칸막이를 두고도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했다.
식사시간 외부 흡연장에선 근로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의자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여럿 보였다. 마스크를 코까지 덮지 않더라도 쿠팡 측 관리자는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 턱에 걸치거나 입만 가려도 착용으로 간주하는 듯했다. 밤이 깊어지며 작업 물량이 늘어나자 사실상 마스크를 제대로 쓰는 이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코로나 보다 미래 더 두려워”
이날 기자가 만난 대다수의 청년들은 마땅한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지 못했거나, 취업 준비 중 급전이 필요한 이들이었다. 쿠팡 목천 물류센터의 시급은 오후조 기준, 1만1450원. 올해 최저시급인 8590원과 비교해도 상당히 높다. 총 9시간 근무니 일급으로 따지면 10만원을 조금 넘는다. 여기에 연장근무와 주휴수당에 따라 급여는 더 오른다.
25살 취업준비생 이모씨도 높은 시급을 보고 이날 근무를 지원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있다는 이씨는 “지금 만원가량의 시급을 주는 곳은 (물류센터가) 유일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친구와 몇 주 동안 일을 해보려고 왔는데, 막상 해보니 버티지 못할 것 같다”라고 털어놨다.
하차 라인에서 만난 30대 김모씨는 경력 6개월의 나름 베테랑이었다. 다른 물류센터에서도 근무를 해봤다는 그는 “쿠팡 물류센터는 그나마 일하기 좋은 편에 속한다”며 “타 물류센터 같은 경우는 분위기도 좋지 않고 악명이 높다”고 귀띔했다. 그는 몇 해 전 다니던 회사가 도산해 물류센터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김씨 역시 코로나19 감염이 걱정된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바짝 돈을 벌어두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감염보다 빈 통장이 더 무섭다”며 “사실 내가 감염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라면서 멋쩍게 웃었다.
코로나19로 친형과 운영 중이던 가게가 문을 닫아 물류센터를 찾았다는 20대 청년도 있었다. 기자와 2시간가량 하차 작업을 한 강모씨는 “잘 될 땐 월매출 800만원을 올리던 호프집인데, 코로나 이후에는 100만원도 벌리지 않았다”며 “형은 지금 다른 지인의 치킨 가게를 돕고 있고, 나는 아직 정해진 것이 없어 답답한 마음”이라고 털어놨다. 며칠 전에는 한 피자 프랜차이즈의 배달 기사 면접을 봤다고도 했다.
실제 코로나19 사태로 고용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청년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지고 있다. 기업들은 채용을 줄이고 있고, 아르바이트 자리마저 여의치 않다. 지난 8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정부가 실직자에게 주는 실업급여 지급액은 지난달 1조원을 넘어서며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작년 동월(7587억원)보다 33.9% 늘었다.
10시간 작업에 11만3590원
통틀 무렵 퇴근 시간. 팔다리의 감각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퇴근버스로 향하는 이들의 발걸음에 고단함이 묻어났다. 이날 1시간 연장근무 포함 10시간을 일하고 번 금액은 총 11만3590원. 얼굴과 콧속을 닦은 휴지에 시커먼 먼지가 묻어 나왔다. 10만원이 넘는 일급을 손에 쥐었지만, 감염의 불안감과 근육통도 함께였다.
한전진 쿠키뉴스 기자 ist1076@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