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막혀…” 절규로 세상을 움직인 플로이드, 영원히 잠들다

입력 2020-06-11 04:04
미국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시신이 실린 흰색 마차가 9일(현지시간) 그의 고향인 휴스턴시 메모리얼 가든 묘지로 향하고 있다. 관이 운구되는 동안 플로이드를 추모하는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그의 이름을 연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9일(현지시간) 고향 땅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 묻혔다. 백인 경찰관에게 목이 눌려 목숨을 잃은 지 보름 만이다. 그의 죽음으로 촉발된 인종차별 항의 시위는 미국을 넘어 세계로 확산됐다. 이날 플로이드의 장례식 장면은 TV와 인터넷으로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한마디도 추모의 발언을 내놓지 않았다.

플로이드의 유족은 이날 오전 휴스턴 ‘찬양의 샘(Fountain of Praise)’ 교회에서 장례식을 가졌다. 500명의 조문객이 참석했고 경찰 폭력에 희생된 또 다른 흑인 사망 사건의 유족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순백의 옷을 차려 입은 동생 로드니는 “전 세계가 형을 기억할 것이고, 그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며 흐느꼈다.

플로이드 추도식을 주관했던 흑인 인권운동가 알 샤프턴 목사는 “당신의 목이 우리 모두의 목이었고, 당신의 고통이 우리 모두의 고통이었다”며 “미국은 형제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추모했다.

플로이드의 관은 그의 어머니가 잠든 휴스턴 외곽 메모리얼 가든 묘지에 묻혔다. 메리 화이트 목사는 추도사에서 “플로이드가 숨지기 직전 ‘엄마’를 외친 순간, 이 나라 모든 어머니가 그의 울음을 듣고 우리의 아이와 손자를 위해 통곡했다”고 말했다. 휴스턴시는 이날을 ‘조지 플로이드의 날’로 선포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장례식장에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 플로이드의 딸 지애나를 향해 “아빠가 세상을 바꾸게 될 것”이라며 “많은 흑인 아이들이 대를 이어 물어왔던 ‘아빠는 왜 떠났나요’라는 질문을 이제 어떤 아이도 하지 않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영혼을 찔러 상처를 내는 인종차별을 다시는 외면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도 플로이드의 이름을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를 추모하거나 애도하는 글도 없었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은 플로이드 장례식이 한창 생중계되던 이날 이른 오후 흑인 출신으로는 첫 참모총장 자리에 오른 찰스 브라운 미 공군참모총장 지명자의 상원 인준 소식을 트윗으로 알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브라운 장군을 미국의 역대 최초 아프리카계 군 총장으로 임명하기로 한 나의 결정이 지금 상원에 의해 승인받았다. 미국을 위해 역사적인 날!”이라고 자평했다. 이어 “애국자이자 훌륭한 지도자인 브라운 장군과 보다 긴밀하게 일하게 돼 흥분된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인종차별 항의 시위에 참석했다가 경찰에 밀려 머리를 다친 70대 노인 마틴 구지노에 대한 음모론을 꺼내기도 했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넘어진 거 자체가 설정 아니냐”며 “극좌 안티파의 앞잡이일 가능성이 있다”며 주장했다. 플로이드 장례식 날조차 통합과 치유 메시지가 아닌 이념갈등 조장 발언을 내놓은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한편 영국 BBC는 미국에서 공권력에 의해 흑인이 목숨을 잃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플로이드의 죽음이 미 전역을 흔드는 대규모 시위로 확대된 것은 플로이드가 숨지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찍힌 영상, 코로나19로 인한 대량실업 사태, 코앞으로 다가온 대선 등의 이유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