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간 동안 손님 4명 탁구장 “그래도 문 열어야지요”

입력 2020-06-12 04:07
재난은 언제나 인간사회에서 가장 약한 곳을 먼저 골라 찾아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에서 기관·기업보다 먼저 타격을 받은 곳은 소상공인 골목이었다.

스포츠계 상황도 다르지 않다. 야구·축구·골프처럼 막대한 자본과 국민적 지지를 밑거름으로 삼아 리그를 재개하고 정상화를 향해 나아가는 프로스포츠와 다르게 생활체육은 코로나19의 덫에 걸려 좀처럼 헤어나올 줄 모른다. 탁구·줌바·에어로빅·스피닝(실내용 자전거) 등을 즐기는 사람들로 생동감 넘치던 체육관은 코로나19 감염 고위험 시설로 지목돼 적막과 그늘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생활체육을 언제까지 방치해야 할까.

“미안하다는 회원 전화가 더 괴로워”

한낮에도 텅 빈 서울 강북구 수유동 OK탁구클럽에서 지난 10일 한 방문객이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오후 1시가 되면 점심식사를 마친 중장년 회원들로 가득찼던 이곳은 서울 양천구의 탁구장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지난주부터 회원들이 발걸음이 뚝 끊겼다. 권현구 기자

지난 10일 오후 2시 서울 강북구 수유동 OK탁구클럽. 건물 4층을 모두 사용해 넓이 256㎡(가로x세로 15m)나 되는 공간을 관장 부부가 쓸쓸하게 지키고 있다. 탁구대 7개 중 땀의 흔적이 남은 것은 단 1개. 탁구장으로 들어서기 전에 발열 검사를 하고 이름과 연락처를 적은 방문객 명단에는 단 6명의 이름만 나열돼 있었다. 개장한 오전 10시부터 이곳을 찾은 사람이 6명뿐이라는 얘기다. 그 중 2명은 관장 부부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오후 1시가 되면 점심식사를 마친 동네 중장년들이 몰려들어 구슬땀을 쏟으며 열기를 높였던 곳이다. 지금은 적막만이 가득하다. 무관중으로 진행되는 야구장·축구장·골프코스에서 나오는 소리는 이곳의 적막과 비교하면 왁자지껄한 편이다.

“운영자제 권고 안내장을 어제(9일) 받았습니다. 그래도 별수가 없잖습니까. 일단 문을 열어야지요. 회원 한 분이라도 오셨다가 헛걸음을 하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 발걸음마저 끊기면 지금까지 버텨온 이유마저 사라질 테니까요.”

관장 임형묵(47)씨는 집합금지명령이 내려지지 않는 한 탁구장을 폐쇄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서울시는 양천구 탁구장발 코로나19 확진자가 증가하던 지난 8일 관내 탁구장에 대해 운영 자제를 권고하고 감염병 예방수칙 준수 명령을 내렸다. 행정이 집행되는 속도는 빨랐다. 이튿날인 9일에 서울의 탁구장 곳곳으로 관할구청발 운영자제 권고 안내장이 날아들었다.

임씨는 안내장을 문 앞에 보란 듯이 붙였다. 임씨는 “방역에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공포에 휩싸였던 지난 2월부터 임씨는 비접촉식 체온측정기를 구입해 찾아오는 회원마다 발열 여부를 확인했고, 문진표 및 방문객 명단 작성을 안내해 왔다고 한다. 또한 운동하거나 음료를 마실 때를 제외하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도록 유도했다.

‘빡빡하게 군다’는 회원들의 원성에도 불구하고 임씨는 탁구대를 2m 간격으로 떨어뜨리고, 2명이 나란히 서서 경기하는 복식도 금지했다. 최근에는 탁구채·탁구대 같은 기구를 통한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거주지를 확인할 수 있는 회원만 들였다. 임씨 부부는 코로나19를 억제하는 범사회적인 노력에 참여하고 있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주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임씨는 “코로나19가 확산됐던 지난 2월부터 회원 수 감소를 느꼈지만 나름대로 어렵지 않게 운영했다. 그런데, 이태원 클럽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한 5월부터 회원 수가 급감했고, 양천구 탁구장이 지목된 지난 주말부터 절반 이하로 줄었다”고 말했다.

환불 요구 못지않게 임씨를 힘들게 만든 것은 회원들의 ‘미안하다’는 말이다. 임씨는 “환불이나 회원 등록 지연을 요구하는 전화를 매일 한두 통씩 받고 있다. 당연히 생계에 영향을 받아 힘들지만, 이웃 같던 회원의 ‘미안하다’는 말을 듣는 것이 더 괴롭다. 건강한 사람들이 모여 건강하게 웃으며 즐기고 그렇게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가는 운동이 탁구다. 그 건강함을 잃어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회원의 방문이 끊긴 10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OK탁구클럽에서 ‘열정·도전·승리·파이팅’을 적은 현수막 앞에 탁구공이 상자에 담겨 있다. 권현구 기자

임씨의 업소처럼 서울시탁구협회에 등록된 탁구장은 408곳이다. 코로나19 유행으로 폐업이 반복되는 현재 운영되는 업소는 350여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서울시는 관내 탁구장에 대한 운영자제 권고를 오는 14일까지 유지할 계획이다. 문제는 그 이후다. 이미 코로나19 고위험군 시설로 낙인을 찍은 상황에서 탁구장은 정상적인 재개는커녕 운영의 근간이 돼 온 생활체육 활동의 장으로서 기능이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조용진 서울시탁구협회 사무국장은 “탁구장에 가겠다고 말하면 감염이라도 될 것처럼 가족들의 만류가 있다는 일부 동호인들의 말을 전해 들었다”며 “탁구는 주거지 접근성이 높고 가볍게 즐길 수 있어 국내 생활체육에서 가장 깊은 뿌리를 내린 종목 중 하나다. 코로나19 유행을 계기로 생활체육의 근간이 흔들리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탁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코로나19 유행 전까지 ‘웰빙 바람’을 타고 성행했던 스포츠댄스형 생활체육 시설은 충남 천안 줌바댄스 강사 워크숍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던 지난 3월부터 코로나19 팬데믹에 휩쓸렸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서 줌바댄스 강습실과 동호회를 운영했던 최모씨는 “이제 일어설 힘마저 잃었다”고 했다.

최씨는 “줌바댄스가 코로나19 확산의 주범처럼 여겨져 3개월 넘게 강습실을 공실로 방치하고 있다. 다음달까지 회원을 들이지 못하면 폐쇄할 수밖에 없다”며 “줌바댄스 이외의 스포츠댄스에서 사회적 거리두기형 안무로 프로그램 만들었지만 이미 낙인을 찍혀 되돌리기 어려울 것 같다. 스포츠댄스 강사 대부분이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한때 기업이나 관공서 레크리에이션에서 스포츠댄스의 인기가 높아 외부 강사로 자주 초청됐지만, 지난 3월부터는 전무한 상황”이라며 “생활체육으로서 스포츠댄스가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에 대해 ‘포스트 코로나’에도 생활체육을 이어가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이 높다. 체육계 관계자는 “생활체육 시설 운영자에게 모든 것을 전가하는 각자도생형 낙인찍기보다 코로나19 억제 이후에도 존속하기 위한 정부·지자체의 의견 수렴 과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