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이소선 ·박형규·조영래… 독재시대 국민의 울타리”

입력 2020-06-11 04:08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서울 용산구 옛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 앞에서 열린 제33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에서 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에게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하고 있다. 서영희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제33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에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 등 민주화운동 유공자 12명에게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다. 정부가 6·10항쟁 기념식에서 민주화운동가들에게 단체로 훈포장을 수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서울 남영동 소재 옛 대공분실 앞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오늘 우리의 민주주의가 이만큼 오기까지 많은 헌신과 희생이 있었다”며 “한 분 한 분, 훈포장 하나로 결코 다 말할 수 없는 훌륭한 분들”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소선 여사부터 차례차례 한 명씩 이름을 불렀다. “전태일 열사를 가슴에 담고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평생을 다하신 고 이소선 여사님” “반독재 민주화운동으로 일생을 바친 고 박형규 목사님” “인권 변호사의 상징이었던 고 조영래 변호사님” “시대의 양심 고 지학순 주교님”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으로 오랫동안 활동하신 고 박정기 박종철 열사의 아버님” “아직도 민주주의 현장에서 우리와 함께 계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님” 등 이름과 함께 공적을 압축해 설명했다. 이밖에 고 조비오 신부, 고 성유보 기자, 고 김진균 교수, 고 김찬국 상지대 총장, 고 권종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고 황인철 변호사 등이 함께 모란장을 받았다.

문 대통령은 “실로 이름 그 자체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이고, 엄혹했던 독재 시대 국민의 울타리가 되어주셨던 분들”이라며 “저는 거리와 광장에서 이분들과 동행할 수 있었던 것을 영광스럽게 기억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성숙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지속 가능하고 보다 평등한 경제는 제도의 민주주의를 넘어 우리가 반드시 성취해야 할 실질적 민주주의”라며 “민주주의가 당연하다고 느낄 때일수록 우리는 민주주의에 대해 더 많이 질문해야 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또 평화와 민주주의, 번영에 대해서는 짧게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평화는 어렵고 힘든 길이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민주주의로 평화를 이뤄야 한다”며 “그렇게 이룬 평화만이 오래도록 우리에게 번영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6·10민주항쟁 33주년인 10일 서울 용산구 옛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조사실을 방문해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을 당했던 욕조에 손을 짚은 채 묵념하고 있다. 현직 대통령이 509호 조사실을 찾은 것은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조사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철저한 고립감 속에 여러 가지를 무너뜨려 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영희 기자

문 대통령은 기념식 후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 당했던 509호 조사실을 방문해 묵념했다. 문 대통령은 조사실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이 자체가 그냥 처음부터 공포감이 딱 오는 것”이라며 “물고문이 예정돼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철저하게 고립감 속에서 여러 가지 무너뜨려 버리는 것”이라고도 했다. 김정숙 여사는 박 열사 영정에 안개꽃과 카네이션, 장미꽃으로 직접 만든 꽃다발을 바쳤다. 김 여사는 대공분실에 대한 설명을 듣다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509호실을 나오기 전 다시 10여초간 묵념했다. 이어 509호실 밖에서 기다리던 박 열사의 형 박종부씨, 민갑룡 경찰청장과 인사했다. 민 청장에게는 “이 장소를 민주인권을 기념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제공해주고, 또 어제는 공개적으로 사과 말씀도 해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