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 “현산, 협상 테이블 나와 구체 조건 제시하라”

입력 2020-06-11 04:06
연합뉴스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조건을 원점에서 재협의하자’고 요청한 데 대해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인수 의지 표명을 환영한다’면서도 “협상 테이블에 직접 나와 구체적인 조건을 먼저 제시해 달라”며 진정성을 촉구했다. 향후 HDC현산과 채권단이 인수 가격, 영구채 출자 전환 등 다양한 조건을 놓고 치열한 수 싸움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산은과 수출입은행은 10일 보도자료를 내고 “시장에서 다양한 억측이 나오고 있었는데 현산이 전날 ‘인수의지에 변함이 없다’고 밝힌 건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현산이 요구한 대로 인수 조건을 재협의하려면 향후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해줄 것을 강조했다. 현산이 인수 포기를 위한 명분 쌓기용으로 협상에 나서는 등 꼼수를 부릴 가능성을 사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산은은 현산에 구체적인 요구사항 제시를 촉구하면서 “서면을 통한 논의는 진정성이 의심될 수 있으니 협상 테이블로 직접 나와 달라”고 했다.

업계는 채권단이 현산의 요청에 ‘우선 만나서 얘기하자’며 다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만큼 향후 인수 조건을 둘러싼 모든 카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올 것으로 본다. 우선 현산이 인수 가격을 깎으려고 할 거란 추측이 가장 많다. 지난해 말 현산·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은 아시아나항공 구주, 신주 인수 가격을 각각 주당 4700원과 5000원으로 상정하고 계약했는데, 이날 주가는 4350원이다. 다만 인수 가격을 깎을 경우 구주 대금으로 남은 계열사를 추스르려 했던 금호산업에 타격을 줘 합의에 난항이 예상된다.

현산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함께 채권단에 갚아야 하는 대출금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도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현재 아시아나항공의 채무는 지난해 빌린 1조6000억원과 지난 4월 지원받은 1조7000억원 등 3조3000억원이다. 박형렬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해당 채권 구조를 어떻게 변형할지를 두고 치열하게 조율할 것”이라고 봤다. 시장에선 이전부터 제기돼온 영구채 5000억원 출자 전환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업계는 협상이 불발될 시 발생 가능한 수도 꼽고 있다. 가장 최악의 수는 다른 매수자가 나오지 않는 경우로 아시아나항공은 실질 주인이 없는 신세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2009년 한화그룹이 인수를 포기했던 대우조선해양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산업은행은 채무를 출자 전환하는 방식으로 대우조선해양을 떠안았다. 이에 산은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거친 후 아시아나항공 계열사인 에어부산, 에어서울을 분리 매각할 가능성이 높다고 업계는 본다.

안규영 박재찬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