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군 주천, 강물 따라 천혜의 비경 속에 담긴 단종의 한·눈물

입력 2020-06-10 20:23
이른 아침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빙허루 위에서 드론으로 내려다본 주천강 일대 모습. 떠오르는 해의 붉은 빛을 머금은 강물이 단종에 대한 애잔함을 담고 있는 듯하다.

강원도 영월(寧越)은 산과 강이 조화를 이룬 천혜의 비경을 간직한 고장이다. 조선 제6대 왕 단종(端宗·1441∼1457)이 유배되면서 한과 슬픔을 품은 역사의 현장으로 바뀌었다.

숙부 수양대군(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봉(降封)당한 뒤 청령포에 유배됐다가 관풍헌에서 사약을 받고 장릉에 묻힌 단종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단종의 자취를 따라 영월에 ‘단종대왕유배길’이 조성돼 있다. 단종의 일거수일투족이 새겨져 있는 충절의 길(주천~배일치마을 17㎞)을 따라가 본다.

주천강 바로 옆 전설을 품은 ‘술이 솟는 샘’.

1456년 음력 6월 22일 만 열여섯 살 단종은 멀고 먼 유배길에 오른다. 한강나루에서 남한강 뱃길을 따라 원주를 거쳐 닷새 만에 영월 땅 주천(酒泉)에 도착했다. 주천은 망산(望山·392m) 아래 ‘술이 솟는 샘’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졌다. 주천강 바로 옆 바위에 ‘酒泉’이란 글자가 또렷이 새겨져 있다. 주천에 얽힌 전설이 있다. 이 샘은 양반이 오면 약주가, 천민이 오면 탁주가 나왔다고 한다. 어느 날 천민이 양반 복장을 하고 샘에 가서 약주를 기다렸는데 탁주가 솟자 화가 나 샘터를 부순 뒤부터 술 대신 물이 나온다고 한다.

주천 주변 ‘술샘공원’에 망산으로 오르는 입구가 있다. 망산 정상에는 빙허루(憑虛樓)가 있다. 빙허는 ‘허공에 기댄다’는 뜻이다. 일제강점기에 무너진 것을 면민의 성금으로 1930년에 다시 지었다가 6·25전쟁 중 불탔다. 1986년 이층으로 새로 지어졌다. 누각에 올라서면 주천강을 끼고 있는 주천면 일대 경치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빙허루와 쌍벽을 이루는 정자가 있었다. 청허루(淸虛樓)다. 청허는 ‘맑고 탐욕이 없는 것에 기댄다’는 의미다. 숙종이 와병 중에 두 정자를 노래한 시편을 지었을 정도였다. 일제강점기에 퇴락해 없어진 뒤 주천리에 재건됐다.

청허루가 복원된 곳에 최근 영월에서 가장 ‘핫’한 ‘젊은 달 Y파크’가 들어섰다. ‘젊은 달’은 영어 젊은(Young)과 달(月)이 합쳐진 말이다. 영월군이 2014년 개관한 ‘술샘박물관’이 미술관과 다양한 설치미술 작품, 공방과 카페 등을 더해 복합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젊은 달 Y파크’ 입구 ‘붉은 대나무’.

입구에 거대한 붉은 대나무 숲을 연상케 하는 조형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강렬한 빨강을 입힌 금속 파이프를 여러 개 연결해 마디진 대나무와 닮았다. 소나무를 쪼갠 장작을 쌓아 만든 거대한 돔 형태의 작품 ‘목성(木星)’도 이색적이다. 꼭대기에 지름 3m 구멍을 갖춘 높이 15m, 지름 12m 돔을 이룬 장작 사이 무수한 틈새로 들어오는 햇빛 조각이 별처럼 눈부시게 반짝거린다.

장작 틈새로 햇빛이 반짝이는 ‘젊은 달 Y파크’ 내 목성.

군등치(君登峙)는 ‘임금이 오른 고개’다. 단종이 오르다 너무 힘이 들어 이름을 물으니 호송하던 관리가 ‘임금이 오르는 고개니 군등치’라 했다는 유래를 가진 고개다. 군등치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굽이치는 주천강의 물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배일치 고갯마루의 큰절 하는 모습의 단종 조각상.

다음은 배일치(拜日峙). 단종이 지는 해를 보고 절을 했다는 고개다. 자신을 위해 죽어간 사육신을 떠올리며 궁궐이 있는 서쪽을 향해 고마운 마음으로 큰절을 하는 모습의 단종 조각상이 있다.

▒ 여행메모
빙허루 입구 술샘공원 무료주차장 이용
다하누촌 한우·묵밥… 맛깔스런 먹거리

수도권에서 강원도 영월군 주천으로 간다면 중앙고속도로 신림나들목에서 나가면 가깝다. 88번 지방도를 따라가다 신일사거리 회전교차로에서 9시 방향으로 빠지면 곧바로 ‘술샘공원’이 나온다. 무료주차장도 마련돼 있다. 신림나들목에서 20분쯤 걸린다.

‘젊은 달 Y파크’는 주천면사무소 뒤 언덕에 자리한다. 입장료는 어른과 청소년 1만5000원, 어린이 1만원이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관람도 좋지만 카페의 커피 맛도 일품이다. 입장권으로 20% 할인해 준다.

주천면사무소 인근에는 한우를 싼 가격에 즐길 수 있는 다하누촌이 있다. 신일리 주천묵집은 도토리묵·메밀묵·손두부 전문집이다. 메밀과 도토리로 만든 묵밥이 맛있다. 묵을 채처럼 썰어 그릇에 담고 육수와 김치 등을 넣은 다음 조밥을 말아 먹는다. 직접 뜯어 말린 갖가지 묵은 나물 반찬도 맛깔스럽다.





영월=글·사진 남호철 여행전문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