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곳에서… 재외국민 보호·안전한 고국행 뒷바라지

입력 2020-06-13 04:03
외교부 재외동포영사실의 이승현(왼쪽)·김정원 사무관. 이 사무관은 코로나19 글로벌 확산 초기에 한국인 입국 제한 국가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때 관련 정보를 안내하는 일을 전담했다. 김 사무관은 중국 우한의 교민들을 전세기로 귀국시킬 때 실무를 담당했다. 외교부 제공

우리 정부가 코로나19에 성공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일선 외교관들의 활약도 숨어 있다. 코로나19가 글로벌 확산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외교 당국을 중심으로 해외에 체류하는 우리 국민을 한국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대규모 수송전이 펼쳐졌다. 올해 1월 말 첫 정부 전세기가 중국 우한 교민 360여명을 싣고 돌아온 이후 5개월 남짓 동안 전 세계 110여개국에서 3만7000명 넘는 우리 국민이 귀국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국민일보는 그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재외국민 보호에 힘쓴 젊은 외교관들을 만나 소회를 들어봤다.

‘죽은 도시’ 같았던 우한

비행기가 착륙을 위해 서서히 고도를 낮췄다. 창밖은 온통 어두컴컴했다. 깊은 새벽시간이라고는 하지만 인구 1000만명의 대도시에서 한 줄기 불빛조차 새어 나오지 않는 건 흔히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비행기가 지표면에 가까워지자 도시의 윤곽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당시 우한 교민 호송을 위해 전세기에 동승했던 김정원(32) 사무관은 12일 “차 한 대,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불도 모두 꺼져 있었다. 마치 죽은 도시 같았다”고 회상했다.

김 사무관은 지난해 말 국립외교원의 외교관 후보자 과정을 수료하고 외교부에 입부했다. 들어오자마자 외교부 내에서 업무 강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진 영사 업무 부서에 배치됐다. 입부 닷새 만인 그해 12월 31일 김 사무관은 ‘우한시 소재 화난해산물시장에서 원인불명 바이러스성 폐렴 발생’이라는 내용을 담은 우한총영사관발 전문을 처음 확인했다. 김 사무관은 당시까지만 해도 일이 이처럼 커질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코로나19가 우한과 후베이성을 중심으로 맹위를 떨치면서 고된 격무가 시작됐다. 우한행 첫 전세기가 뜨는 당일조차 김 사무관은 고작 한 시간 남짓밖에 자지 못했다. 교민 송환 계획을 짜느라 새벽 4시 가까이 회의가 이어진 데다 퇴근하고 나서도 전세기 출발 일정을 문의하는 취재진 전화에 온종일 시달렸다. 전세기 이륙 후에도 교민 좌석 배치와 방역 대책 등을 논의하는 기내 회의가 비행시간 내내 이어진 탓에 눈 붙일 짬도 나지 않았다.

우한국제공항에 미리 집결해 전세기 탑승을 기다리던 교민들은 놀랄 만큼 침착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정체불명의 전염병이 창궐해 전면 폐쇄된 도시의 주민이라는 느낌조차 들지 않을 정도였다. 김 사무관은 “교민들께서 차분하고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며 우리 지시에 따라주셨다. 그 모습을 보고 감동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 사무관은 세 차례에 걸친 우한 전세기에 모두 탑승해 교민의 귀국을 도왔다. 우한에 다녀온 인원은 일괄적으로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2주간 자가격리를 해야 했다. 때문에 그는 총 6주 동안 꼼짝없이 집에만 머물렀다. 그가 우한에 다녀온 사실이 주변에 알려질까 김 사무관 자신은 물론 가족들까지 단단히 말조심을 했었다고 한다.

전입 닷새 만에 떨어진 ‘업무 폭탄’

이승현(32·여) 사무관은 김 사무관보다 1년 먼저 외교부에 들어왔다. 입부 첫해에는 아세안(ASEAN) 부서에서 근무하다 지난 2월 19일자로 김 사무관과 같이 영사 관련 부서에 배치됐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이 사무관의 생일이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나흘이 지난 2월 23일, 정부는 코로나19의 감염병 위기 경보를 ‘심각’ 단계로 격상했다. 이후 세계적으로 한국이 ‘코로나19 창궐국’이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우리 국민에게 입국 제한을 거는 국가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해외여행이나 출장을 앞둔 우리 국민들이 갑작스러운 입국 제한 조치로 당황하지 않도록 외교부 차원에서 사전 안내를 제공할 필요가 생겼다. 재외공관에서 각국의 입국 제한 조치 변동 사항을 전문으로 보내면 추가로 세부 정보를 확인한 뒤 표 형태로 정리해 외교부 해외안전여행 홈페이지에 올리기로 했다. 이 일은 이 사무관 한 사람에게 오롯이 맡겨졌다. 당시에는 한국에 입국 제한 조치를 취한 국가가 10여개국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크게 증가하면서 한국발 여행객의 입국을 제한하는 국가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심각 단계 격상 닷새 만인 지난 2월 28일 50개국을 넘어섰으며 3월 6일에는 100개국마저 돌파했다. 매일 오전 5시30분쯤 출근해 하루 종일 전문 수백 개를 확인하고 자료를 정리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점심시간조차 아까워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웠다.

이 사무관은 “국가 수가 늘면서 압박감도 커져갔다”며 “단순한 공지를 넘어 항공사와 여행사, 여행객 간 금전적 문제가 걸려 있어 잘못된 정보가 올라가면 큰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민원인의 문의 전화도 쇄도했다. 해외 공항에서 입국금지 통보를 받거나 교통편이 끊겨 고립되는 등 안타까운 처지에 놓인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이 사무관은 “외국에 있는 민원인이 귀국을 하려는데 항공편이 모두 끊기고 전세기 예약도 끝났다며 전화를 해온 게 기억에 남는다”며 “그때로서는 당장 추가 전세기를 띄울 수도 없어 그저 그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었다”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