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당론 투표와 징계

입력 2020-06-11 04:05

2019년 12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권력남용과 의회방해 혐의 탄핵 표결에서 세 명의 민주당 하원의원이 이탈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는 여론이 반대보다 훨씬 높았던 터라 세 표씩이나 이탈한 것은 매우 당황스러웠다. 트럼프 대통령을 탄핵시키려면 한 표라도 아쉬운 민주당에서 무려 세 명의 의원이 탄핵을 반대한 반면 공화당에서는 반란이 없었다.

미국에서는 당론이란 게 없다. 원래 미국은 13개주에서 연방을 하자고 합의한 뒤 미합중국이 탄생했기 때문에 아직도 주가 연방보다 앞선다는 의식이 강하다. 그만큼 중앙집권적 정치문화도 아니다. 실제로 미국 정당에는 당대표도 없고 의원의 자율성이 상당하다. 세 명의 이탈자 중 콜린 피터슨 의원은 보수적인 미네소타주에서 살아남기 위해 민주당 내에서 가장 보수적인 성향을 유지해 왔다. 이와 달리 뉴저지주의 제프 밴 드루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을 탄핵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고 새해 들어 아예 탈당해 공화당으로 옮겼다.

그 전인 2019년 9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자신의 노딜 브렉시트 당론을 따르지 않은 21명의 보수당 의원을 출당시켰다. 이 일에는 총리의 동생이자 기업부 부장관을 맡아 내각 회의에 참석하던 조 존슨도 관련이 있었다. 정작 총리인 형이 브렉시트 난제를 해결하고자 마지막으로 노딜 브렉시트 카드를 던졌는데 동생이 의회 표결에서 반대했던 것이다. 투표 후 부장관직과 의원직을 던진 동생을 따라 현직 고용연금부 장관도 사퇴와 동시에 탈당했다. 이때 전직 장관 셋에 윈스턴 처칠 전 총리의 외손자 의원까지 출당 징계를 받았다.

영국은 워낙 당론투표의 전통이 강하다. 수백 년 낡은 하원의사당 안 초록색 벤치에 앉아 보수당과 노동당은 서로 당론에 따라 찬성과 반대를 외치고 그 결과가 집계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회의장 바깥 로비에서 의원을 찬성과 반대로 나눠 줄을 세우고 의회 직원이 각각 이름을 확인한다. 공개투표 과정에서 당론을 어긴 의원이 나오면 당은 해당 의원에게 당직이나 의원직 박탈 등 징계를 내린다. 영국 정당은 이런 과정을 거쳐 기율이 강화돼 왔다.

며칠 전 2019년 12월 국회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을 표결하는 과정 중 강제 당론을 어기고 기권했던 금태섭 전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의 경고 징계를 받은 사실이 공개됐다. 금 전 의원은 징계가 무원칙하고 불공평하다고 반발했고 당내 일각에서도 헌법과 국회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헌법 제46조는 ‘국회의원은 국가 이익을 우선해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규정하고, 국회법 제114조 2항은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국회법 제114조 2항은 헌법 제32조 2항의 ‘모든 국민은 근로의 의무를 진다’는 규정과 비슷해 보인다. 헌법 제32조 2항을 법적 의무로 강조한다면 근로를 못하거나 안 하는 국민이나 근로 기회를 제공하지 못한 국가는 모두 위헌 행위를 한 게 되듯 국회법 제114조 2항을 강조하다 보면 과거 국회의 모든 당론투표나 당론을 정한 모든 정당은 위법을 저지른 게 된다. 이에 비해 정당법 제37조 1항은 ‘정당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활동의 자유를 가진다’고 보장한다. 정당은 스스로 당론을 정하고 이에 따라 활동하며 당의 기율을 해친 경우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징계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무릇 정당은 서로 비슷한 이념이나 정강 및 정책을 중심으로 모여 권력을 획득하는 것을 추구하는 조직이다. 의원이 당에 기속되지 않고 투표하는 거라면 도대체 정당의 존재 의의는 무엇인가. 그것이 과연 정당의 정의에 부합한다고 할 수나 있을까. 의회정치학은 의원이 지역구에서 재선되기 위해 당론에 따라 또는 소신에 따라 투표한다고 본다. 이게 서로 충돌한다면 최선을 선택하고 의원은 그 결과에 책임진다.

과거 우리 국회에는 의원이 정권의 거수기이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강제 당론이 흔하지 않고 그마저 토론 과정을 거쳐 정해진다. 다른 것도 아니라 당의 정체성과 결부된 표결에서 강제 당론을 따르지 않는다면 제프 밴 드루 의원같이 당을 바꾸는 것이 낫지 않을까. 조기축구회에서도 회칙을 어기면 벌이 있는데 영국과 같은 수준은 아니라도 당론을 거스른 의원을 징계하지 않는 것이 공당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