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내 삶의 주인 바꾸기

입력 2020-06-12 00:08

옷을 입을 때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면 어떻게 될까. 그다음 단추를 아무리 잘 끼워도 옷매무새가 안 난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첫 단추가 있다. 바로 산 제사의 삶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1장부터 11장에 이르기까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은혜를 전했다. 12장부터는 그 은혜를 받은 성도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말씀한다.

첫 출발은 로마서 12장 1절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이제 구원 얻은 자로서의 마땅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 출발이 바로 자신의 몸을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고 한다.

구약의 제사는 제물을 죽여 하나님께 드렸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한 번의 제사로 영원한 속죄의 효과를 얻게 하신 신약 시대에는 굳이 제물을 죽여 제사드릴 필요가 없어졌다.

대신 우리는 날마다 자아를 죽여서 하나님께 드리는 산 제사를 드려야 한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15장 31절에서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말했다. 날마다 자신을 쳐서 죽이는 산 제사를 드릴 때 비로소 우리 안에 예수 생명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을 해도 여전히 내가 주인이 되면 결국 사람을 죽인다. 믿음의 사람을 세워 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싹을 자르고 무너뜨린다. 자신이 죽어 있지 않았던 가인을 보라. 결국, 동생 아벨을 죽이지 않았던가.

성도의 삶에서 가장 첫 번째는 산 제사다. 항상 맞는 말을 하지만 내가 살아있으면, 그 맞는 말이 사람들을 살려내고 공동체를 회복시키지 않고 더 깊은 어둠으로 몰아간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종종 우리 삶에 개입하셔서 하시는 일들이 있다. 내 삶의 주인이 바뀌도록 급작스럽고 답답하기까지 한 일들을 벌이시는 것이다. 주인이 바뀌지 않아 여전히 내 삶의 주인은 나이고, 예수님은 그저 종이 돼 있다면 그 삶은 볼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죽어 천국은 갈지 모르지만, 이 땅에 사는 동안 항상 기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인지라 수시로 염려하게 돼 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에 불평하는 삶을 살게 돼 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삶에 고통스럽고 답답한 상황을 통해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신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히브리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하신 일이 무엇이었나. 먼저 모세의 자아를 죽이는 훈련이었다. 핫셉슈트 공주의 양아들로 애굽의 모든 학문을 섭렵했을 모세였지만, 그의 지식과 열정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해 낼 수는 없었다.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미디안 광야로 쫓겨가게 했고, 그곳에서 또 다른 40년 훈련을 받게 하셨다. 그 훈련은 철저히 자아를 죽이는 산 제사의 훈련이었다. 모세의 나이가 80세가 됐을 때 마침내 그 훈련이 끝난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타도 타도 꺼지지 않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셨다.

사람의 힘으로 일하면 애굽의 감독관을 쳐죽일 뿐이다. 하지만 여호와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일하면 타도 타도 꺼지지 않는 불처럼 지치지 않고 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내가 철저히 죽고 내 삶에 예수가 주인 노릇 할 때 그런 역사가 나타난다. 지치지 않는다. 실망할 것도 없고, 속상할 일도 없다. 그래서 위로한답시고 ‘주의 일하느라 많이 힘드시죠’ 하고 건네는 말도 실례가 된다.

김대영 미국 워싱턴 휄로십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