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의약품, 주기적 약효 재평가 필요하다

입력 2020-06-11 04:04

우리나라 건강보험 진료비는 2019년 기준 86조원 규모다. 이 가운데 약품비는 20조원으로 전체의 23%다. 5년 전보다 줄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주사제와 약품 처방이 많았다. 2000년 이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적정성 평가가 도입돼 비율이 대폭 줄었지만 아직도 선진국에 비해 많은 편이다.

의약품이 국민건강보험에 등재되려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안전성 평가 등을 거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경제성 평가와 전문위원회 의견을 거쳐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절차가 까다로운 것은 한 번 정해진 가격이 건강보험 재정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효율적 의약품 관리를 위해선 건강보험 진입 단계 이전의 안전성·유효성 평가와 더불어 약 가격의 적정성을 따지는 근거가 되는 경제성 평가, 그리고 등재 이후 적정한 관리가 균형 있게 유지돼야 한다. 특정 의약품 사용이 많다면 원인을 분석해 임상적 유용성 또는 가격 적정성 등을 살펴야 한다. 이 제도가 의약품 급여 적정성 재평가다.

약 가격 재평가와 관련해 그동안 정부는 몇 차례에 걸쳐 등재된 의약품 목록을 정비한 바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 기간이 끝나고 복제약(제네릭)으로 전환하는 때에 가격을 더 낮추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의약품 재평가 시에는 약품 가격뿐 아니라 임상적 유용성도 중요한 평가 대상이 돼야 한다. 의약품은 자칫 잘못 관리되면 국민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주고 국민건강보험 재정에도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모든 복지 제도는 비가역성이 존재한다. 한 번 제도의 혜택을 받는 대상이 생기면 돌이키기 어렵다는 뜻이다. 근본적으로는 의약품 진입 시점에서 철저히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의약품 사용 이후에도 주기적인 재평가 체제를 갖춰야 한다. 국민 안전을 위해서도, 건강보험 재정 보호를 위해서도 그러하다. 임상적 유용성을 포함한 의약품의 주기적인 재평가 제도가 활성화돼 보다 안전한 의료 환경이 조성되기를 기대한다.

윤석준 고려대 보건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