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화적 통화정책이 의도치 않게 ‘좀비기업’(파산하지 않는 부실기업)을 늘려 애초 기대한 경기 부양 효과를 제한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인도 중앙은행 부총재를 지낸 비랄 아차르야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 등은 최근 전미경제연구소(NBER) 보고서에서 ‘좀비신용’(부실기업에 대한 저금리 대출)을 완화적 통화정책의 함정으로 진단했다.
중앙은행이 대대적으로 돈을 푸는 데도 저물가 현상이 빚어지는 것은 값싼 대출 덕에 목숨을 부지하는 부실기업이 늘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좀비기업 증가는 과열경쟁으로 해당 산업의 성장을 저해하게 된다.
연구진은 좀비신용 증가가 기업 부도 및 신규 진입 감소, 상품가격·이윤 하락, 임금·재료비 상승, 생산성 저하와 관련 있음을 강조했다. 이들은 “부실기업에 대한 값싼 신용은 인플레이션 하락 효과가 있음을 보여준다”며 “좀비신용은 취약한 기업이 도산하지 않도록 도움으로써 초과생산 능력을 창출해 결과적으로 이윤과 가격 하락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좀비신용과 (디스)인플레이션: 유럽 사례’라는 제목의 해당 보고서를 보면 유로 지역 12개국에서 2012년 평균 4.5%였던 좀비기업 비율은 2016년 6.7%로 늘어난 반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3%대에서 0%대로 하락했다. 2012~2016년은 유럽 각국이 완화적 통화정책을 편 시기다. 좀비기업 비율이 상위 10%인 경우는 하위 10%에 비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연간 0.23% 포인트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 제조업은 좀비기업 비율 증가폭(38.5% 포인트)과 소비자물가상승률 하락폭(0.81% 포인트)이 모두 가장 컸다.
좀비기업 비율이 늘지 않고 2012년 수준을 유지했다면 2016년까지 유로 지역 전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평균 0.45% 포인트 더 높았을 것으로 분석됐다. 아차르야 교수 등은 “(완화적 통화정책 상황에서) 수익을 추구하는 투자자들의 행태는 고위험 기업에까지 차입비용을 최저치로 밀어붙였다”며 “값싼 부채의 과잉은 어려움을 겪는 많은 기업이 도산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게 했고, 결국 경제의 ‘좀비화’로 이어졌다”고 서술했다.
이들은 완화적 통화정책이 본래 의도한 물가상승 및 경제성장 효과를 내도록 하기 위해서는 자금이 실물경제에 전달되는 경로를 미시적 수준에서 살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