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구성, 미국 승자독식-독일 협의체… 한국은 ‘시한’만 있다

입력 2020-06-10 04:03

21대 국회에서도 여야 대치로 원 구성이 법정 시한 내 이뤄지지 못했다. 미국이나 독일 의회는 구체적인 규정을 토대로 상임위원장을 배분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이에 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지각 개원’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관행을 깨기 위해 상임위원장 배분 기준이나 방식을 법제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국회법에 원 구성 관련 내용은 시한(최초 집회일과 의장단 및 상임위원장 선출에 대한 시한) 정도만 규정돼 있다. 원 구성 협상의 핵심인 상임위원장 배분에 관한 기준이나 원칙은 정해져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상임위원장 배분은 전적으로 원내 교섭단체 간 협상에 의존해 왔다. 정치 상황과 의석수에 좌우되는 교섭단체 간 협상은 매번 차질을 빚었고 지각 개원은 일상화됐다. 13대 국회부터 20대 국회까지 원 구성에 평균 41.4일이 소요됐다. 해외 주요국 의회처럼 원 구성에 관한 명확한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제인 미국은 하원 의사규칙에 ‘상임위원장은 다수당 의원총회에서 제출한 명단에서 1인을 본회의에서 선출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 규칙에 따라 하원은 선거가 끝난 이후 다수당 의총에서 상임위원장을 결정한다. 다수당이 모든 상임위원장을 차지하는 승자독식제다. 의사규칙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상임위원장 배분을 놓고 여야 간 싸움은 벌어지지 않는다.


내각제인 독일은 의회 운영의 중요 사항들을 교섭단체 간 협의를 통해 결정하는 전통이 확고하다. 독일 하원 의사규칙에는 ‘상임위원장은 원로평의회에서 이뤄진 합의에 따라 선출된다’고 규정돼 있다.

원로평의회는 의회 의장, 부의장, 교섭단체에서 지명한 의원 등 20여명으로 구성된다. 의석수를 고려해 원로평의회에서 교섭단체별 상임위원장 배분을 결정한다. 독일도 한국처럼 협상에 의존하는 방식이지만 원로평의회라는 공식 협의체를 통해 원 구성이 이뤄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협상이 수월한 것으로 분석된다. 영국도 의회 의사규칙에 원내 정당 의석 비율을 고려한 협상을 통해 상임위원장을 배분하도록 돼 있다.

매번 원 구성 협상 표류로 국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가게 된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해외 주요국들처럼 원 구성 관련 규정을 명확히 하면 불필요한 진통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9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국회법을 고쳐서 상임위원장을 배분하는 방식이나 방법 등을 명시하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지금같이 과반수일 때 어떻게 할 것인지, 그냥 의석수에 비례해 나눌 건지, 그냥 투표로 결정할 것인지, 여소야대일 때는 어떻게 할지를 아예 국회법으로 명시한다면 불필요한 싸움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우리 국회는 1987년 민주화 이후 다수결보다는 합의와 타협이 거대한 흐름이었다”며 “여야가 원 구성 관련 개선안을 마련하려면 일단 진행 중인 21대 국회 원 구성 협상에서는 여당의 양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여당의 양보가 전제된다면 21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부터라도 상임위원장 배분 등 원 구성과 관련한 개선안을 여야가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상헌 김이현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