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도입을 둘러싼 정치권의 논쟁이 뜨겁지만 논의 양상은 백가쟁명식이다. 재원 마련 방안도 불투명한 데다 지급 대상에서도 전 국민이냐, 특정 계층이냐를 두고 주장이 엇갈린다. 그나마 재원 마련 방안 등에서 가장 구체적인 구상을 밝힌 건 이재명 경기도지사다.
이 지사는 지난 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는 “현 상태에서 기본소득을 당장 월 100만~200만원씩 줄 상상을 하니 재원 부족, 증세, 기존 복지 폐지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시행이 불가능한 것”이라며 “첫해에 연 20만원으로 시작해 연 50만원까지 만들면 일반회계예산 조정만으로 (증세 없이) 재원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지사 말처럼 ‘증세 없는 기본소득 도입’은 정말 가능한 걸까. 통계청 장래인구특별추계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인구는 5178만1000명으로 추산된다. 이 지사 주장처럼 국민 1인당 1년에 20만원씩 지급하는 데 필요한 재원은 10조3562억원이다. 1인당 50만원씩 지급하려면 25조8905억원이 든다. 산술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문제는 효용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9일 “연간 20만~50만원 지급은 의미 있는 수준의 기본소득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연 20만~50만원 지급을 한 달 단위로 환산하면 1만6660~4만1660원이다.
이 지사는 이날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기본소득에 대해 “수요·공급이 무너진 상황에서 수요를 보강해 경제를 살리자는 정책이지, 불쌍한 국민 도와주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월 1만~4만원 지급으로는 소비 진작을 유도하기에 역부족이라는 반론이 많다. 성 교수는 “결국 의미 있는 수준까지 기본소득을 지급하려면 증세와 복지체계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이 지사는 기본소득을 연 100만원까지 지급하려면 현재 연간 50조원이 넘는 조세감면을 축소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1인당 연 100만원을 지급하기 위해서는 51조7810억원의 재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지사가 언급한 조세감면 혜택은 대부분 서민이나 중소·중견기업에 돌아가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3월 공개한 조세지출기본계획에 따르면 지난해 국세 개인 감면액 31조2000억원 가운데 68.9%가 서민과 중산층에 귀속됐다. 기업 감면액 18조6000억원 가운데 75.8%는 중소·중견기업에 귀속됐다. 조세감면 축소가 역으로 서민과 중소기업에 대한 실질적 증세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도 청년층에 국한된 기본소득 구상을 밝힌 바 있다. 정부 본예산의 20%를 떼어 내 100조원 규모의 재난지원금예산을 만들고 청년들에게 1인당 100만원씩 지급하자는 안이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아무리 좋은 취지라도 어떤 한 사업을 위해 한 해 본예산의 20%를 덜어내는 것은 전례도 없고,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고 꼬집었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