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기본소득, 일종의 수당”… 개념정리 필요

입력 2020-06-10 04:06

최근 정치인들의 입에서 우후죽순 나오는 ‘기본소득’은 엄밀히 말하면 기본소득이 아닌 일종의 수당에 불과하다. ‘무조건, 모두에게’ 지급한다는 게 기본소득의 기본 개념인데 정치권의 주장은 선별 지원에 가깝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본소득 공론화를 위해서는 개념부터 정리한 뒤 기존 복지제도와의 관계 설정, 재원 확보 등 전제조건에 대한 중지를 모으는 게 선결 과제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기본소득 열풍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와중에 나온 긴급재난지원금의 성공에 기인한다. 전 가구에 제공된 재난지원금의 유용성이 확인되자 아예 평소에도 이를 기본소득을 통해 실현하자는 게 정치권 주장의 핵심이다.

기본소득은 모두에게, 무조건, 개인당, 현금을, 주기적으로 주는 다섯 가지 특징을 가진다. 즉 부자와 가난한 사람, 노인과 청년 등을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준다는 것이다. 재난지원금과 유사하지만 주기적이고 전 국민이라는 점에서 더욱 확대된 개념이다.

그런데 최근 정치권의 주장은 다소 결이 다르다. 기본소득 열풍을 주도한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세입 여건을 들어 우선 청년들에 한해 기본소득을 도입하자고 주장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어려운 계층에게 우선 배분되는 한국형 기본소득 도입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여당 측 주장도 선별 지원에 중점을 두고 있다. 결국 진정한 기본소득이 아닌 기존 현금성 복지제도와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셈이다. 유일하게 기본소득의 개념에 가까운 주장을 하는 이는 이재명 경기도지사 정도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주장하는 것이 기본소득인지, 수당 확대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못박는다.

기존 복지체계와의 관계도 속히 정리해야 한다. 전통적인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아동수당, 기초연금 등 현금성 복지와 충돌이 일어난다.

재원에 한도가 있기 때문에 기존 제도와 기본소득을 병행하기 쉽지 않다. 기본소득 도입 시 복지 제도가 통폐합되면서 저소득층은 오히려 지원액이 감소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기본소득 실험에 들어갔던 핀란드 또한 기존 실업급여를 기본소득으로 대체해 근로 유인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이에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부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복지 축소를 전제로 한 기본소득은 논의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기본소득이 복지체계를 어느 수준까지 대체할지, 중복 지급을 할지 등에 대한 정치권의 입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재원 마련 방안이다. 금액이 크고, 기존 현금성 복지 제도와 병행할수록 필요한 돈의 규모는 커진다. 결국 큰 폭의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기본소득 논의를 진전시키기 어렵다.

장단점도 명확하다. 기본소득은 금액이 크지 않으면 ‘보편성’이라는 장점이 도드라지지 않을 수 있다. 모두 100원씩 받는 것보다 취약계층에 1만원을 몰아주는 것이 복지 차원에서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기본소득보다 전 국민 고용보험이 더 낫다고 주장하는 근거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기본소득은 국가경제의 잠재성장률을 제고할 수 있지만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과 구직·근로의욕 저하도 가져올 수 있다. 복잡한 셈법으로 인해 아직까지 어떤 나라도 기본소득을 본격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

남재욱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부연구위원은 9일 “기본소득이 요즘 남용되고 있는데, 개념을 정리하지 않으면 논의 자체가 시작될 수 없다”며 “모두에게 무조건 주는 기본소득 특징 등이 없다면 기존 제도와 다르지 않는데, 왜 굳이 기본소득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종=전슬기 기자, 박재찬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