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 3000명 뜨거운 힘, 훨훨 나는 부천FC

입력 2020-06-10 04:07
프로축구 K리그2 부천 FC 1995 선수들이 9일 경기도 부천 종합운동장에서 훈련을 앞두고 밝은 표정으로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부천은 1·2부 리그를 통틀어 유일한 협동조합 시민구단으로, 2020시즌 리그 5라운드까지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부천=서영희 기자

지난달 27일 부천종합운동장. 홈팀 부천 FC 선수들에게 후반 추가시간 3분이 주어졌다. 상대 제주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공격라인을 끌어올리면서 압박을 계속해왔다. 수비진의 오른 측면에서 긴 포물선을 그리며 공이 날아왔다. 모두가 발이 얼어붙은 듯 멈춰있던 그 순간, 상대 공격수가 홀로 솟구쳐 공을 들이받았다. 공이 골키퍼의 손을 스쳐 골망을 흔들었다. 0대 1, 아까운 패배였다.

한참을 벼린 승부였다. 이번만큼은 절대 지지 않겠노라 다짐했던만큼 아쉬움이 컸다. 수비수 김영찬은 “프로 데뷔 이래 그날만큼 잠을 못잔 게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4연승을 달리며 좋았던 기세가 자칫 무너질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부천은 이어진 경기에서 다시 승리를 거두고 리그 선두로 복귀했다. 상대는 리그 최다득점 팀 수원 FC였다. FA컵 일정으로 1주간의 리그 휴식기를 맞은 9일, 국민일보는 K리그2 선두 부천 선수단과 만났다.

통한의 1패, 그리고 다시 1승

올 시즌 K리그2는 어느 때보다 역동적이다. 기업구단으로 재창단해 대대적인 투자를 한 대전 하나시티즌, ‘백투백’ 승격을 노리는 제주 유나이티드, K리그 터줏대감 전남 드래곤즈와 경남 FC까지. 2부보다 1부가 더 익숙한 강호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5라운드까지 진행된 현재 순위표 맨 위에 올라있는 건 의외의 이름이다. 중소도시 부천을 연고로 하는 시민구단, 부천 FC 1995다.

사실 부천의 시즌 초반 선전은 이전 시즌에서도 몇 차례 벌어졌던 일이다. 2018시즌 부천은 개막과 함께 5연승을 질주하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이어지는 경기에서 부천은 거짓말처럼 무너지면서 3연패를 당했다. 2016년 초반 10경기에서도 5승 4무 1패로 좋은 성적을 거둔 적이 있지만 중반에 들어 기세가 꺾이며 승격에 실패했다.

연고 이전의 역사로 숙적 관계인 제주와의 경기에서 패한 뒤 부천의 기세가 꺾일 것이란 예상이 나왔던 건 그래서였다. 선수들은 이번만큼은 분위기가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2017년 프로 데뷔 이래 부천에서만 뛴 ‘원클럽맨’ 이정찬은 “지난해 초반 2연승 뒤 승리를 챙기지 못했던 경험이 있어 준비를 더 철저히 했다”면서 “제주전 뒤 다시 이기는 게 중요했다. 승리를 챙겨서 리그 선두도 탈환했고 분위기가 다시 올라갔다”고 말했다.

시민구단 부천의 새로운 실험

부천의 선전은 K리그 전체에도 의미있다. 부천은 지난 2015년부터 사회적 협동조합 모델을 도입해왔다. 기존에 팬들이 세웠던 주식회사 형태의 부천 FC와 새로 만든 부천 FC 협동조합이 함께 공존하는 체제다. K리그의 기존 시민구단 모델인 주식회사로는 계속해서 재무재표상 수익을 내지 않으면 존립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새로 고안한 모델이다. 현재 부천 협동조합 조합원은 약 3000명 수준이다. 이를 1만명 수준까지 늘리는 게 구단의 목표다.

협동조합 모델은 K리그에서 일반적인 기업구단 형태와는 정반대 방향을 지향한다. 조합원인 연고지 팬들에게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야 구단의 운영이 가능하다. 때문에 부천 구단은 그 어느 팀보다 지역사회와 밀착하려 시도하고 있다. 부천 시내에는 ‘부천 FC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협동조합의 이사진을 구성한 지역 소상공인들과는 구단의 주요 업무를 함께 한다. 일정 금액 이상의 조합비를 낸 조합원들에게는 시즌권과 같은 효력이 있는 조합증을 지급한다.

다음 일정에서 부천의 앞길은 다소 험난하다. 6라운드 전남과의 경기를 시작으로 대전과 서울이랜드 등 전력이 만만찮은 팀들과의 대결이 기다리고 있다. 열정적이기로 유명한 부천 서포터가 있다면 더 든든했을 일정이다. 주장 김영남은 “부천의 서포터는 K리그2에서 최고”라면서 “올해 안에 팬들의 응원 속에서 경기를 뛰고 싶다. 경기장에서 뵐 날까지 기다려달라”고 메시지를 전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