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산 “아시아나 인수 재협상”… 값깎기? 발빼기?

입력 2020-06-10 04:01
사진=연합뉴스TV 제공

HDC현대산업개발이 채권단에 ‘아시아나항공 인수 조건을 원점에서 재협의하자’고 요구하면서 항공업계 ‘빅딜’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업계 안팎에선 HDC현산의 인수 의지 여부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HDC현산으로부터 공을 넘겨받은 채권단이 어떤 협상 카드를 내놓을지가 향후 빅딜 성사에 관건이 될 전망이다.

HDC현산은 9일 보도자료를 통해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지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인수거래종료일을 연장해 인수 조건을 원점에서 재협의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달았다. 앞서 지난달 말 채권단은 HDC현산에 ‘거래종료일인 6월 27일까지 인수 의지가 있는지를 밝히지 않으면 계약을 연장하기 어렵다’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었다.

HDC현산은 “인수 계약을 체결한 지난해 말 이후 인수 가치를 훼손하는 상황들이 발생했다”며 “채권단이 나서서 인수 계약을 합리적으로 재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HDC현산은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3분기 계약 체결 당시와 비교해 지난해 말 2조8000억원의 부채가 추가되는 등 자본잠식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며 “와중에 아시아나항공은 사전 동의 없이 부실 계열사에 1400억원을 지원하면서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업계 안팎에선 이번 공식 입장에 깔린 속내를 두고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다. 일부는 HDC현산이 인수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는 데 의미를 뒀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는 “전제조건을 달긴 했지만 어쨌든 채권단과의 협상 자리에 앉을 의지가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반면 인수 포기를 위한 출구전략이라는 해석도 적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자료엔 HDC현산이 국내외 로펌을 고용, 기업결합 승인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등 그간의 인수 노력을 강조하는 내용의 비중이 크다”며 “향후 인수가 불발됐을 때를 대비해 현산은 할 만큼 했다는 명분을 쌓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지를 밝혀온 정몽규 HDC현산 회장이 이번 자료에선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이런 추측에 근거를 더한다.

향후 인수 조건을 두고 채권단과 HDC현산의 줄다리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채권단은 그간 인수 가격 등 핵심적인 인수 조건은 ‘재협상 불가’라고 밝혀왔었다. 그러나 이날 현산이 이를 뒤집어 달라고 공식적으로 요청한 만큼 기존 인수 조건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박형렬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HDC현산이 비공식적 자리에서 채권단에 어느 수준의 조건을 요구할 건지가 관건”이라며 “영구채 출자전환부터 구주 가격 인하 등 모든 조건에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봤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