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하원칙으로 대답해봐요.”
백발의 최인옥(74)씨가 수어를 하며 동시에 음성으로 현금숙(52)씨에게 말했다. 현씨의 손은 수어를 하는 최씨의 손을 잡고 있었다. 최씨는 수어로 ‘제주도에 누구와 언제 갔다가 언제 왔습니까’라고 질문했다. 현씨도 수어로 대답했다. ‘딸, 아들과 함께 지난 목요일에 갔다가 어제…’라고.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음성으로 “아,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다시 수어로 ‘그저께 왔습니다’고 했다. 최씨가 현씨의 허벅지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렇구나’라는 뜻이었다.
현씨는 1주일에 한 번 서울 동작구 우리동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지하 1층 회의실에서 최씨에게 수어를 배운다. 일반적인 수어가 아니라 손으로 수어를 만져 이해하는 ‘촉수화’다. 배우는 이유는 청력과 시력이 언제 모두 사라질지 몰라서다. 그는 어릴 때부터 중증도 난청(집중해야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정도)을 지니고 살아 왔다. 시각에 의존해 세상과 소통했지만 2000년 망막색소변성증(RP) 진단을 받았다. 3년 전부터 시력이 빠르게 나빠져 모든 게 뿌옇게 보인다. 식탁에 놓인 반찬도 구분할 수 없다. 시야도 좁아져 180도 중의 5도만 볼 수 있다. 현씨는 지난달 20일 취재팀과 만나 “(촉수화를 배우는 일이) 나한테 필요하고 또 나처럼 시각과 청력을 함께 잃어버리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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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탐사2팀 권기석 김유나 권중혁 방극렬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