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산다] 피로연은 결혼식 전에

입력 2020-06-13 04:05

최근 자녀 결혼식이 있다는 메시지 2개를 받았다. 하나는 ‘○○○회원 자녀 결혼. 일시 ○월○일 장소 ○○○식당(피로연)’. 청첩을 하며 결혼식 일시와 장소, 아들인지 딸인지는 내용이 없고 피로연 시간과 장소만 알리고 있다. 결혼식은 이튿날이었다. 이 사람 제주 원주민이다. 다른 하나는 ‘○○○회원 자녀 결혼. 일시 ○월○일 10:30∼장소 ○○예식장(피로연)’. 이 사람은 결혼식과 피로연을 같은 날 한 장소에서 한다. 입도민이다.

제주도는 육지와 달리 피로연을 결혼식 전에 한다. 마을회관이나 음식점을 빌려 집에서 준비한 음식을 대접한다. ‘10:30∼’이라고 표시한 것은 그때부터 저녁 때까지 하루 종일 잔치가 이어진다는 의미다. 피로연을 이틀, 사흘 하기도 한다. 구좌읍 읍내 한 식당에서 결혼 피로연을 사흘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누구 결혼식이냐 했더니 수산업을 하는 사람 아들 결혼식이라고 했다. 초대 손님이 많기때문이다. 피로연을 결혼식 전에 하루, 이틀 하는 것은 제주의 전통 혼례 관습이 남긴 흔적이다.

제주 전통 결혼식은 보통 3일에서 5일 정도 했다. 첫날 남자들은 차일을 치고 솥을 건다. 부녀자들은 잔치에 사용할 그릇과 조리 기구, 상 등을 각 가정에서 모은다. 둘째 날 남자들은 돼지를 잡고 순대를 삶는다. 부녀자들은 떡을 빚고 전을 부친다. 셋째 날부터 손님을 맞고 음식을 대접한다. 이러한 일을 마을 사람이 함께한다. 차일을 잘 치는 사람은 아무개라 으레 그가 줄을 치고, 돼지를 잡을 때 칼은 누가 잡아야 하는지 다 정해져 있다. 그릇과 상을 집집마다 모아봤기에 누구네 집에 밥숟갈이 몇 개인지, 살림살이가 어떤지 다 알게 된다. 육지에서도 과거 잔치가 있으면 동네 상이 다 모였다. 제주에서는 그보다 집중력이 더 강했고 최근까지 지속됐다.

잔칫집에서 일하는 동안 동네 사람들은 모두 잔칫집에서 식사를 한다. 일하는 동네 사람들이 음식을 차리며 스스로도 세끼를 챙긴다. 잔치는 이미 시작됐다. 그때는 칼잡이 도감 근처를 맴돌아야 좋은 고기를 많이 먹을 수 있다. 잔칫집에서는 돼지를 해체해 부위별로 나누고 손님에게 대접할 수 있게 썰어 내놓는 도감이 최고의 권력자다. 동네 애들은 부모가 모두 잔칫집에서 일하기 때문에 아침을 잔칫집에서 먹고 학교에 갔다 점심 때 와서 먹고 다시 학교로 갔다. 제주사람들은 이렇게 잔치를 했다.

동네마다 마을회관이 생기며 잔치의 여러 절차가 생략됐다. 차일은 남자들이 윷놀이 하도록 한두 개면 되고 식기와 상, 조리 기구는 회관에 상시 준비돼 있다. 돼지는 마을에서 잡지 않고 도축장에서 잡아온다. 하루 넘겨 하는 잔치는 줄었고 그나마 읍내 식당으로 나가는 일이 많아졌다. 젊은이들은 자기가 살던 집 마당에 차일을 치고 맞절을 하는 혼례보다 꽃으로 장식된 예식장에서 하얀 드레스를 입고 결혼행진곡에 맞춰 화려하게 입장하고 싶어 한다. 혼주도 잔치음식을 차리기보다 돈으로 지불하는 게 편해졌다. 지금은 예식장 문화가 우성이라 열성으로 보이는 동네잔치는 줄고 있다.

박두호 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