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에 연재 중인 ‘대한민국 데프블라인드 리포트’를 준비하면서 미국인 여성 로라 브리지먼을 알게 됐다. 191년 전인 1829년 미국 뉴햄프셔에서 태어난 브리지먼은 두 살 때 성홍열을 앓은 뒤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장애를 안게 됐다. 브리지먼은 아무런 교육을 받지 못하고 집에서 짐승처럼 키워지다 7세에 인생을 바꿔줄 인연을 만났다. 미국 첫 시각장애아 학교 교장이던 새뮤얼 하우이 박사가 뉴햄프셔를 찾아가 부모를 설득하고 보스턴의 학교로 아이를 데려갔다.
하우이 박사는 열쇠, 숟가락, 나이프에 점자를 붙여 놓고 브리지먼에게 손으로 만지게 했다. 브리지먼은 처음에는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다가 연습이 반복되자 어느 순간 그 일에 목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곧 점자만 읽고 숟가락을 찾을 수 있게 됐다. 이어 알파벳과 숫자를 배웠고 명사, 동사, 형용사를 익히면서 점자와 수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게 됐다. 미국에서 가장 처음으로 교육에 성공한 데프블라인드(Deaf-Blind)는 헬렌 켈러가 아닌 브리지먼이었다. 헬렌 켈러는 브리지먼보다 51년 뒤에 태어났다(브리지먼은 헬렌 켈러와 달리 외부 활동은 하지 못했고 시각장애 학교의 방 안에 머무르다 60세에 사망했다). 1842년 미국 여행 도중 브리지먼을 만난 영국 작가 찰스 디킨스는 감명을 받아 저서 ‘미국 여행 노트’에 글을 썼다. 훗날 이 글을 본 헬렌 켈러의 어머니가 시각장애아 학교에 “하우이 박사의 교육 방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학교가 추천한 사람이 바로 그 학교 졸업생이자 당시 스무 살이던 앤 설리번이었다. 설리번은 하우이 박사가 브리지먼을 어떻게 가르쳤는지 기록해 둔 것을 샅샅이 읽고 헬렌 켈러를 만나러 갔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이야기는 그 이후부터다.
그러니까 헬렌 켈러 이야기는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새로운 교육 분야를 개척한 선구자들의 경험과 노력이 기적의 바탕이었다. 유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브리지먼을 가르치고 설리번을 배출한 첫 시각장애아 학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퍼킨스 맹학교다. 이곳은 브리지먼 이후에도 계속 데프블라인드 아이들을 가르쳐 이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했다. 미국 각 주에서 비슷한 교육이 가능해지자 퍼킨스 맹학교는 교육이 가장 어려운 뇌병변장애나 자폐가 더해진 아이들로 교육 분야를 확장했다.
다른 나라에서 180여년 전 이룬 일을 우리는 시작도 못 하고 있다. 헬렌 켈러는커녕 브리지먼도 아직 나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들이 가졌던 장애는 매우 드문 것이며 우리나라에는 그런 사람이 거의 없는 줄 알았다. 그러나 취재 과정에서 생각보다 많은 시청각장애인을 발견했다. 그중 김예지씨는 25세가 됐는데도 아직 의사표현을 하지 못한다. 부모는 딸이 원하는 게 뭔지 알아내기 위해 오늘도 시행착오를 거듭한다. 예지씨 부모의 한은 어렸을 때 딸에게 적절한 교육을 해 주지 못한 것이다. 아이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고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는 ‘나 몰라라’ 했다. 이제는 자신들의 사후를 대비해 ‘배고프다’ ‘아프다’ 등 기초적인 표현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부모의 소원이다. 예지씨가 브리지먼이 받은 정도의 교육만 받았더라도 가족의 삶의 질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예지씨 가족은 그런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소통이 빛처럼 빨라진 세상에서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상황은 엄청난 소외로 이어진다. 정부는 너무 오랫동안 시청각장애 아동의 특수교육을 외면했다.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이런 아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또 이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관련 지원을 시작해야 한다.
권기석 이슈&탐사2팀장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