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민생 집중, 김여정-대남 총괄… 뚜렷해진 역할 분담

입력 2020-06-09 04:04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7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노동신문이 8일 공개한 사진으로, 김 위원장의 공개 활동이 보도된 것은 지난달 24일 이후 보름 만이다. 김여정(아래 사진 맨 왼쪽) 당 제1부부장도 참석해 김 위원장의 지시 사항을 받아적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역할 분담이 더욱 뚜렷해졌다. 북한 대남 부서가 김 제1부부장 지휘 하에 각종 독설을 퍼붓는 가운데 김 위원장은 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소집해 민생 문제를 집중 논의했다. 김 위원장은 내치, 김 제1부부장은 대남을 담당하는 ‘쌍두 체제’가 꾸려진 셈이다. 북한 주민과 대외 선전매체를 동원한 대남 비난전도 나흘째 이어졌다.

조선중앙통신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13차 정치국 회의가 지난 7일 김 위원장 주재로 소집됐다고 8일 보도했다. 회의에서는 화학공업 발전과 평양시민 생활 보장, 당 규약 개정 등이 다뤄졌다.

특히 석탄으로 인조석유를 생산하는 ‘탄소하나(C1)화학공업’과 북한산 원료를 활용한 ‘카리(칼륨)비료공업’ 문제가 주로 논의됐다. 김 위원장은 비료 생산능력 향상을 위한 화학공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안건 내용으로 미뤄 대북 제재와 코로나19로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회의를 소집한 것으로 보인다.

회의에서 대북전단 등 대남 정책과 관련된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대남 정책은 ‘대남 사업 총괄’로 통하는 김 제1부부장에게 전적으로 위임하고 김 위원장 자신은 민생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김 제1부부장은 정치국 후보위원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했다.

김 위원장과 김 제1부부장의 업무 분담을 두고 남북 관계에 일부 여지를 남겨뒀다는 분석이 나온다. 두 사람이 각각 ‘굿 캅·배드 캅’(좋은 경찰과 나쁜 경찰) 역할을 맡았다는 것이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3월에도 김 제1부부장이 대남 비난을 한 뒤 김 위원장이 위로 메시지를 보낸 적이 있다”며 “김 위원장 자신은 남북, 북·미 관계를 직접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정상 외교의 여지를 남긴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남 비난전도 계속됐다. 대외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양대가리 걸어놓고 말고기 판다는 말이 있는데 어찌 보면 남조선 당국을 두고 한 소리 같다”며 “사대매국행위, 동족 적대시, 전쟁책동 등 이전 이명박근혜 보수 ‘정권’의 악취 나는 행적을 그대로 보는 듯하다”고 비꼬았다. 개성에서는 조선직업총동맹 산하 노동계급과 직맹원들이 참가한 가운데 대남 비난 집회가 열렸다.

북한이 이날 오전 9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정례 업무 통화를 받지 않으면서 사무소 폐쇄가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한때 제기됐다. 북한이 통화 수신을 거부한 것은 2018년 9월 연락사무소 개설 이후 1년9개월 만에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8시간 뒤인 오후 5시 통화는 정상적으로 수신했다. 다만 오전 업무 통화를 받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북한이 오전 수신을 거부한 것이 단순한 해프닝일 가능성도 있지만, 남측의 반응을 떠보거나 길들이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조성은 손재호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