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승계 싸고… 12년간 지난했던 검찰과 삼성의 ‘평행선’

입력 2020-06-09 04:06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일 오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의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법원에 출석하면서 포토라인에 멈추지 않고 그대로 법원 안으로 들어갔다. 권현구 기자

원정숙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 주재로 8일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검찰과 변호인단은 반박을 거듭하며 평행선을 달렸다.

검찰은 “이 부회장이 일반 국민이라면 이렇게 많은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별검사 수사와 대법원 유죄 판결을 받았던 삼성을 향한 날선 비판이었다. 이에 맞서 삼성 측 변호인단은 “검찰이 구성하는 범죄 혐의를 수긍할 수 없다”고 맞섰다.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검사 이복현)는 이날 영장심사에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통한 이 부회장 ‘승계작업’의 불법성을 설명하며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가 충분히 있었다”고 주장했다. 과거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이 문제가 됐던 전례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문제가 되풀이됐다는 취지였다. 2009년 대법원은 삼성에버랜드 CB에 대해서는 무죄를 판단하면서도 삼성SDS BW 저가 발행은 “주주와 회사에 모두 손해를 끼친 배임”이라며 이건희 회장 등에게 유죄 취지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변호인단은 검찰에 맞서 이 부회장의 관여를 전면 부인했다. 이 부회장이 합병과 관련해 불법적인 내용을 보고받거나 지시한 일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다. 검찰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자체를 ‘사기적 부정거래’로 봤지만 변호인단은 무리한 판단이라고 반박했다. 모든 회사에서 일정 부분의 주가 방어는 허용된 행위이며, 나아가 이 부회장이 시세조종에 관여했다는 의혹은 상식 밖이라는 것이었다. 검찰의 수사가 1년6개월 이상 진행된 점을 감안하면 현 단계에 증거인멸의 우려 또한 없다고 변호인단은 강조했다.

이날 치열하게 진행된 검찰과 변호인단의 공방은 사법절차의 출발점일 뿐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여부와 무관하게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사태는 결국 법원의 판단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청구됐다는 것은 기소가 전제돼 있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구속 여부는 일종의 ‘예심’에 해당할 뿐 삼성그룹 지배구조 문제를 둘러싼 법원의 판단이 확정되기까지는 여전히 오랜 시간이 남아 있다는 얘기다.

이 부회장이 검찰·특검 수사선상에 오른 건 이번이 세 번째다. 그는 에버랜드 CB 사건과 관련해 2008년 2월 28일 피의자 신분으로 삼성특검의 조사를 받았다. 당시 결과는 불기소 처분이었다. 다시 피의자 신분이 된 건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8년 후였다.

박영수특검은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 측에 뇌물을 건네고 삼성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정권 차원의 도움을 받았다고 봤고 이 논리는 대법원에서 인정됐다.

검찰은 삼성그룹이 재계 1위 기업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수사의 필요성과 의미가 충분하다고 강조한다. 삼성의 행보를 대다수 기업들이 주시하는 만큼 검찰의 문제 제기와 법원의 판단만으로도 기업들의 불법적 지배구조 문제에 경종을 울리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로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진행되는 이번 수사는 부담이다. 이 부회장 등은 경기 위축을 거론하며 ‘삼성 위기론’까지 내세우고 있다. 검찰이 법원의 최종적인 유죄 판단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장기화한 수사 기간, 피의자들의 잦은 소환,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등은 모두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경원 허경구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