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횡성군 안흥면의 풍취산 자락에 한 사역자의 꿈이 영글어가고 있다.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이곳에서 자신의 경륜과 영성, 지식을 활용해 세상 사람들의 건강을 지켜주면서 병든 영혼과 육체를 치유하겠다는 꿈이다. 20여년 해외 선교사역에 매진하다 돌아온 김맹회 목사(70·사진)가 그 주인공이다. 3년여 전 이곳에 터를 잡은 김 목사는 ‘레드파인 650 안흥’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차별화된 힐링타운을 세우기 위한 꿈을 가다듬고 있다. 영동고속도로 새말IC로 빠져 오른쪽 안흥면 쪽으로 가다보면 전재고개를 넘어야 한다. 워낙 험준해 옛날에는 산적들이 들끓었다는 그 고개 왼쪽으로 해발 700m의 풍취산이 봉긋이 솟아 있다. 바로 김 목사가 꿈을 키우는 곳이다.
80여만 평에 이르는 적송 군락지에 참나무 자작나무 등이 섞여 빽빽이 숲을 이룬 이곳에서 김 목사는 자연치유력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건강을 지켜주고 질병을 치유하는 일을 하고자 한다.
이곳 해발 약 650m에 2만평 이상의 부지를 확보한 김 목사는 요즘 이곳에 생활관을 지어놓고 ‘자연인’처럼 지내면서 힐링타운 조성을 위한 막바지 정지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해발 600~700m는 인체에 가장 좋은 ‘힐링기압’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혈액순환이 가장 활발한 조건을 갖추고 있어 세포생성과 면역력 강화에 영향을 줘 자연치유력이 상승되면서 건강증진의 최적의 입지라는 것이다.
“최근 많은 연구에 따르면 자연치유력 향상을 위해서는 항상성 유지, 자기방어, 자기재생뿐만 아니라 환경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해발 650m와 적송 천연휴양림은 힐링을 위한 천혜의 조건을 갖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 목사는 여기에다 선교센터, 수련관, 힐링텔, 전원주택단지, 원적외선 사우나, 산채재배단지 등을 조성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은퇴 선교사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도 만들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이 중에서 김 목사가 특별히 관심을 두는 시설은 수련관이다. 기공, 태극권, 명상, 요가, 자기치료, 뜸, 부황뿐 아니라 색소폰이나 드럼 등 악기연주 등 다양한 힐링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다. 김 목사가 해외선교사로 나가기 전이나 선교사역을 하면서 익힌 다양한 지식과 기술을 전수하고자 하는 것이다.
힐링텔의 경우 원적외선과 황토온돌을 도입하는 등 건강증진과 질병치유에 가장 좋은 시설로 꾸밀 계획이다. 전원주택단지는 유럽형 원시림 별장을 모델로 해서 주변 적송 자연휴양림의 효과를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설계된다. 이런 시설의 조성에는 김 목사가 신학공부를 하기에 앞서 오랜 기간 건축업을 했던 관록이 뒷받침된다.
산채재배단지는 이미 어느 정도의 모양을 갖추었다. 이전부터 전국 곳곳을 다니며 정보를 입수하면서 공부해온 김 목사가 산판 한쪽에 수많은 종류의 산나물과 약초를 심어놓은 것이다. 김 목사는 이곳을 온전한 하나님의 선물로 여긴다. 해외선교 사역을 마치고 돌아와 오래 전부터 꿈꿨던 힐링타운 건설을 위한 부지를 물색하던 중 기적적으로 이 땅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예전부터 머릿속에 그려온 힐링타운을 조성하기 위해 이곳저곳 부지를 찾아 다녔지만 경제적인 문제서부터 많은 어려움에 부닥쳤습니다. 어쩔 수 없이 모든 걸 하나님께 내려놓고 기도에 매달렸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한 믿음의 형제를 만나 우여곡절 끝에 이곳 풍취산 사유지 2만여평을 구입하게 됐습니다. 하나님의 절묘한 인도하심이었죠.”
그랬다. 김 목사로서는 이곳 땅을 확보하게 된 것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전국 이곳저곳 부지를 물색하러 다니던 중 김 목사의 계획을 알게 된 한 크리스천이 자신 소유의 풍취산 땅을 안내하면서 예상치 못한 거래를 하게 된 것이다.
더구나 그 땅을 둘러싸고 있는 적송 군락의 국유림을 활용할 수 있는 조건은 국내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김 목사의 인생과 신앙 역정은 누가 봐도 흥미롭고 감동적이다. 전북 정읍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파란 많은 젊은 시절을 보낸 뒤 하나님을 만나 목사가 되고 자비량으로 중국과 동남아 등지를 다니며 선교사역을 한 과정은 그야말로 한 편의 드라마로 손색이 없다.
일찍 어머니를 여읜 뒤 방황하다 해병대에 들어가 월남전에 참전해 숱하게 죽을 고비를 넘긴 과정, 손수레를 끌고 시장바닥을 헤맨 뒤 사업을 시도하다 연거푸 실패하며 인생의 밑바닥으로 떨어졌다가 하나님을 만난 과정 등은 지금 회상해도 김 목사의 가슴을 뜨겁게 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나서 건축업으로 큰돈을 벌다가 느닷없이 가슴을 울리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해 신학을 하고 선교사로 변신했다가 지금에 이른 과정도 절절하다.
“저한테 하나님은 참으로 절묘하신 분입니다. 여러모로 부적합한 조건을 가진 저를 만나주신 것부터 목사에 이어 해외선교사로 이끄신 것까지 반추해보면 저 스스로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거기다 선교사역을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하시고 힐링타운을 만드는 꿈을 꾸게 하신 다음 이 땅을 갖도록 하신 걸 생각하면 기적이라는 말이 떠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김 목사는 1987년부터 선교사역에 나섰다. 어느 날 새벽기도를 하던 중 하나님의 뜻을 깨우친 뒤 바로 잘 나가던 건축업을 정리하고 신학공부를 시작하면서 선교사를 평생의 업으로 삼았다.
그러다 1994년 홀연히 중국으로 떠나 곳곳을 돌며 선교활동에 매진했다. 그 과정에서 태극권과 다양한 대체의학을 공부하면서 무려 8개의 자격증을 땄다. 중국에 이어 혈혈단신 필리핀 범죄집단의 소굴로 들어가 선교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런 김 목사가 요즘 또 하나의 고비를 만났다. 자신의 숙원인 힐링타운 ‘레드파인 650 안흥’ 조성사업이 마냥 순조롭지만은 않은 것이다. 막상 일에 착수하고 보니 생각보다 복잡하고 규모 또한 방대해 좀처럼 속도를 내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거기다 목사로서 이 사업을 하면서 혹여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부지불식간에 들곤 한다. 그래서 요즘은 일을 하면서도 잠시도 기도를 쉬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벅찬 사업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산에 들어와서 일을 하면서 같이 할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동역자나 조력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죠. 아니면 저보다 더 좋은 능력이나 조건을 가진 사람이 맡아서 주도적으로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문득문득 듭니다.”
그렇다고 해서 김 목사는 결코 불안하거나 조급하지 않다. 어차피 하나님께서 하도록 이끄신 일이기에 앞으로도 그분이 인도하실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마음을 비우고 시작한 일이기에 부담감 같은 건 없다. 부나 명예를 바라고 시작한 일이 아니기에 하나님의 뜻대로 이뤄질 것으로 믿고 있다.
김 목사는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만난 수많은 문제를 기적으로 바꿔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능력을 생생하게 경험했다. 무엇보다 그분께 맡기고 간절히 기도하면 못 이룰 일이 없다는 사실도 깨우쳤다. 그래서 김 목사는 요즘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시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장 28절)라는 말씀을 입에 달고 있다.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