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부터 2018년 첫 촬영까지 3년간 시나리오를 16번 고쳤습니다. 원고를 뒤집고, 또 뒤집었어요.”
오는 10일 영화 ‘결백’으로 장편 데뷔전을 치르는 박상현(43) 감독은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어두운 터널을 걷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8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 마련된 인터뷰 자리에서였다.
16번의 산통을 거쳐 세상에 나온 영화는 최근 언론배급시사회에서 탄탄한 서스펜스를 앞세워 호평 받았다. 박 감독은 “생각보다 더 좋은 반응에 놀랐다”며 “배종옥 허준호 신혜선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의 힘인 것 같다”고 공을 돌렸다.
영화는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엄마(배종옥)가 살인 용의자로 몰렸다는 것을 알게 된 변호사 정인(신혜선)이 엄마의 결백을 파헤치는 법정 스릴러다. 영화계에 여성 서사가 본격적으로 불붙기 전인 2015년 나온 이 여성 중심 시나리오는 일찌감치 제작사와 투자사의 관심을 모았다. 무엇보다 ‘상주 농약 사이다 사건’ ‘보령 청산가리 농약 사건’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등 실제 사건을 조사해 만든 탄탄한 줄거리가 백미다.
사건의 직접 인용은 피했다는 박 감독은 “모녀의 서사를 구상 중이던 당시 상주 농약 사건을 접하고 관심을 갖게 됐다”며 “다만 한 사건을 직접적인 모티브로 삼는 건 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모녀의 이야기 안에 범죄물 요소를 접목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브라운관 스타 신혜선과 배종옥 허준호 등 굵직한 배우들의 하모니도 돋보인다. 신혜선의 경우 그가 당찬 수습 검사 은수 역을 맡았던 tvN 드라마 ‘비밀의 숲’을 보고 출연을 제안했다. 박 감독은 “혜선씨가 조승우씨, 배두나씨 같은 베테랑들 앞에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 빛나더라. 그런 점에 끌렸다”고 떠올렸다. 이어 “극의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역할로써 배종옥, 허준호 선배님은 꼭 함께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박 감독은 단편 연출작 ‘스탠드 업’(2009)으로 제8회 미장셴단편영화제 희극지왕 최우수작품상을 받으며 주목받는 신인 감독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단편 영화 연출 이전엔 ‘그때 그사람들’(2004) ‘사생결단’(2006)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7) 등 작품에서 조감독 생활을 거치며 경험을 쌓았다.
총제작비 약 60억원에서 홍보비용 등을 제외한 ‘결백’의 순제작비는 36억원 정도. 박 감독은 오랜 조감독 경험 덕에 제작비를 더 알차게 쓸 수 있었다고 떠올렸다. 그는 “표준근로계약을 잘 지키면서도 만족스러운 촬영이 가능했다. 배우·스태프가 서로를 가족처럼 배려해줬기 때문”이라며 “향후 작품에서도 현장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 감독이 되고 싶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두 차례 개봉이 연기됐던 영화는 침체한 극장가에 재시동을 거는 작품이라는 의미도 더해졌다. 조심스럽게 관심을 당부한 박 감독은 “앞서 개봉한 ‘침입자’가 흥행하고 있는 건 무척 고무적인 현상”이라며 “우리 영화가 극장가가 살아나는 발판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