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경기도 용인의 대한항공 연습 체육관. 백발의 외국인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엔드라인 바깥에 서서 훈련하는 선수들에게 때론 짧게, 때론 길게, 좌우 번갈아가며 공을 던져줬다. 이 공을 세터 한선수나 유광우가 토스해주면 정지석, 곽승석, 손현종 같은 간판 공격수들이 호쾌한 스파이크로 연결했다. 리시브가 흔들릴 때 정확한 토스로 공격까지 마무리 짓는 이단공격을 연습하는 듯 했다.
그 다음엔 실전을 방불케 하는 화끈한 미니게임이 이어졌다. 선수들은 센터를 활용한 속공과 후위에서의 파이프 공격을 지속적으로 시도했다. 수비 시엔 블로커들이 상대편 공격을 예측하고 끊임없이 뛰어 올랐다. 선수들은 밝은 얼굴로 연신 함성을 질렀고, 백발 외국인은 코트 한 쪽 구석에서 팔짱을 낀 채 선수들을 매의 눈으로 관찰했다.
이 남성은 프로배구 남자부 최초 외국인 사령탑으로 임명된 대한항공의 로베르토 산틸리(55) 신임 감독이다. 대한항공은 박기원(69) 전 감독 후임으로 지난달 24일 이탈리아 출신 산틸리 감독을 임명했다. 훈련 뒤 인터뷰에서 “안녕하세요, 저는 로베르토 산틸리입니다”란 한국어로 말문을 연 그는 “우리는 좋은 스프를 갖고 있다. 소스만 조금 첨가해 더 맛있게 만들려 한다”고, 미식 문화가 발달한 이탈리아인다운 소감을 밝혔다.
이날 훈련은 산틸리 감독이 팀을 맡은 뒤 진행한 첫 훈련이었다. 산틸리 감독은 선수들에게 두 가지 원칙을 강조했다. ‘집중하기’과 ‘실전처럼 하기’다. 산틸리 감독은 “리시브할 땐 리시브에, 속공할 땐 속공에 집중해 세부적으로 나눠 반복해야 실력이 오른다”며 “또한 실전처럼 해야 감각이 오르고 기술을 더 빨리 습득할 수 있어 훈련에 대결 구도를 넣으려 한다”고 밝혔다.
세터 출신의 산틸리 감독은 2002년 이탈리아 21세 이하(U-21) 대표팀 감독을 맡아 U-21 유럽선수권 대회에서 이탈리아에 금메달을 안겼다. 그 외에도 호주 남자 국가대표팀과 이탈리아, 폴란드, 러시아, 독일 리그 팀을 지휘하는 등 여러 나라를 경험했다. 그리고 이번엔 한국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한국 프로배구 최초 외국인 감독이란 타이틀이 부담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산틸리 감독은 “도전이란 의미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입국 뒤 2주 격리기간 동안 직전 시즌 영상을 모두 돌려보며 공부했다는 그는 “유튜브에서 본 V-리그 탑10 랠리 영상에서 코트를 넘어가는 공을 허슬플레이로 잡아내는 리베로들을 보고 한국의 수비력에 감탄했다”며 “전위 블로킹 라인에서 (발 맞추는) 센터들의 조직력은 약점이라 이 부분의 훈련을 매일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전임 감독 체제에서 2016-17·2018-19시즌 정규리그 1위, 2017-18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시즌은 중도에 중단돼 정규리그 2위에 그쳤다. 때문에 ‘통합 우승’은 구단의 숙원과 같다. 산틸리 감독은 “여기 온 목적은 당연히 우승”이라고 단정한 뒤 “그 전에 우승이란 단어를 마음에 품었을 때 두려워하지 않는 팀이 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석한 주장 한선수(35)는 “아직 첫 훈련이지만 선수들도 감독님께 기대한 게 많다”며 “감독님이 ‘연습이 즐거워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 말처럼 연습을 즐겨야 시합처럼 집중력있게 할 수 있다. 훈련을 더 하다보면 (전력이) 더 좋아질 것 같다”고 기대했다.
용인=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