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언택트(비대면) 기업설명회(IR)’가 열린 서울시청 8층 스튜디오. 눈부신 조명이 비치는 무대 위로 국내 벤처기업 대표들이 연이어 올라왔다. 이들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은 관객이 아닌 카메라 3대. 발표가 시작되자 무대를 둥그렇게 둘러싼 대형 모니터에 발표자료가 띄워졌다. 카메라가 레일을 따라 움직이며 다각도에서 발표자를 비췄고, 남은 시간을 알리는 ‘5분 시계’가 모니터 최상단에서 초읽기에 들어갔다.
서울시 주최 온라인 국제회의 ‘CAC(Cities Against Covid-19) 글로벌 서밋 2020’의 기업설명회 순서는 다가올 언택트 시대의 예고판이었다. 서울시 테스트베드사업 출신인 유호상 ‘이노넷’ 대표와 이정훈 ‘텔로팜’ 대표도 관객 대신 카메라 앞에서 글로벌 투자자들을 상대로 기업을 소개했다. 한발 먼저 언택트 IR을 경험한 두 대표는 “현장 관객과 소통할 수 없어 아쉬웠지만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기업경쟁력을 알릴 수 있었다”고 총평했다.
베테랑 사업가인 유 대표에게도 언택트 IR은 낯선 경험이었다. 그는 “카메라 울렁증 탓에 고생했다. 어딜 봐야 할지 모르겠더라”며 웃은 뒤 “모니터에 띄워진 발표자 료를 읽느라 바빴다”고 했다.
이노넷은 휴대용 인터넷공유기를 공급해 아프리카처럼 인터넷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도 무선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회사다. 유 대표는 “중소기업에는 흔치 않은 글로벌 IR 기회였다”며 “세계 단위로 기업을 광낼 수 있다는 게 흥분됐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영상장비들이 잘 갖춰져 있어 현장 발표보다 더 트렌디하게 비쳤을 것”이라며 “단 관객의 반응을 살필 수 없어 소통이 안 된다는 점은 아쉬웠다”고 했다.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이기도 한 그는 “요즘 대학강의 땐 녹화영상을 틀어준 뒤 학생들과 카카오톡으로 실시간 대화하는 식으로 소통한다”며 “질의응답 순서도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텔로팜은 각종 식물에 머리카락 두께의 반도체 탐침센서를 부착해 수분 흐름 속도와 병충해 감염 여부를 관리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미 브라질 커피농장과 뉴질랜드 키위·아보카도 농장에서 텔로팜 기술을 접목했다.
이 대표의 무대에선 ‘농자지천하지대본’을 표현한 그림과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의 사진이 나란히 나타났다. 이 대표는 “인류가 우주 밖으로 나가려면 농업부터 발전해야 한다”며 “농업이 혁신으로 가는 길에 반도체가 있을 것”이라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