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치유의 정거장’… 성도들 상한 마음을 만지다

입력 2020-06-09 00:05
미국 뉴욕 하은교회 성도들이 지난 1월 교회에서 열린 설 잔치 때 자녀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고훈(50) 뉴욕 하은교회 목사는 미주 한인 교계에서 촉망받는 차세대 목회자다. 14년 전 해체 위기의 작은 교회를 맡아 치유·회복 목회로 1000명이 넘는 대형교회를 일궈냈다.

고 목사는 성결대 출신으로 1994년 미국 유학을 왔다. 캘리포니아 얼라이언스 신학대에서 목회학석사 학위를 받고 방지일 목사의 사촌동생인 방지각 목사가 담임하는 뉴욕 효신장로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사역하다 알래스카 선교사로 헌신했다.

고 목사는 “2001년 인생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려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겨울이면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알래스카로 향했다”면서 “작은 시골 마을인 페어뱅스 지역에서 4년간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으로 고통을 겪는 원주민들을 돌보며 오직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깊이 있게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회고했다.

그는 2006년 4번째 내부 분쟁 후 해체 수순을 밟던 그레이스교회에 부임했다. 성도라고 해봐야 서류에만 존재하는, 이름뿐인 교회였다. 그는 부임 후 선교지에서 4년간 쌓았던 말씀의 내공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힐링 스테이션(Healing station, 치유의 정거장) 교회’라는 개념으로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자 상처 입은 이민사회 성도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고 목사는 “교회는 잠시 왔다 가는 정거장과 같은 곳으로 사람의 마음을 만지는 작업실과 같다. 목회도 성도들의 상한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이라며 “기차 정거장에서는 삶은 달걀과 사이다를 먹는다. 마찬가지로 교회에선 지친 영혼에 치유의 기적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이기든 지든 상처가 생긴다”며 “얄미운 손님 때문에, 치솟는 물가 때문에, 계속 늘어가는 청구서 때문에 ‘이게 사람 사는 꼴인가’ 싶어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이민자에게 말씀과 찬양으로 위로를 주고 새 에너지를 주는 ‘힐링 스테이션’ 목회를 했다”고 말했다.

말씀 중심, 회복 중심의 목회를 펼치며 새벽기도회를 중시하자 교회는 1년 만에 성전 구입을 고민해야 할 정도로 커졌다. 고 목사는 “영적으로 갈급한 교인들이 소문을 듣고 수평 이동으로 갑자기 몰려들기 시작했다”면서 “그렇다고 목말라하는 이들에게 수평 이동이라며 죄책감을 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일 4번 예배를 드리면서 주변에 어려운 교회를 돕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소개했다.

교회는 주택가인 뉴욕 베이사이드 29번가에 주차장도 없는, 80년 넘은 굿세퍼드루터란교회 예배당을 매입했다. 고 목사는 “하나님의 계산 방법은 우리의 계산방법과 달랐다. 교회는 돈 한 푼 없이 240만 달러의 예배당을 매입했는데, 이 과정에서 초창기 100여명의 성도들은 ‘돈이 일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가 일한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고 설명했다.

하은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교회’라는 뜻이다. 강단에선 그리스도인의 성품을 중시하는 메시지가 선포된다. 고 목사는 “좋은 교회는 좋은 사람이 있어야 한다. 좋은 사람은 좋은 성품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성경이 말하는 좋은 영성”이라면서 “잘 사는 것은 돈이 많은 것이 아니라 가족과 교인, 이웃과 좋은 사이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교회는 문제의 원인을 빨리 찾아서 꺼뜨리는 데 힘써야 한다”면서 “크리스천은 문제를 찾기보다 해답을 찾아내고 분쟁의 불씨를 꺼뜨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성도들이 늘어나면서 200석 규모의 교회는 발 디딜 틈이 없어졌다. 최대한 교회 건축을 않기 위해 짜낸 아이디어가 1부 예배를 활용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전 8시 1부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1만5000달러 작정 헌금을 한 것과 똑같다’ 등의 표어를 만들었다. 하은교회는 지금도 교회를 건축하는 대신 헌금을 지역목회자 자녀의 장학금 등으로 흘려보내고 있다.

주차장이 없는 200석 규모의 예배당 앞에서 ‘치유의 정거장’ 목회 개념을 소개하는 고훈 목사.

고 목사는 “나는 교회를 크게 만들거나 건축을 하는 데 달란트가 없다. 만약 교회가 그런 것을 원한다면 다른 목회자를 찾아야 한다”면서 “바람직한 교회는 프로그램이나 성장 중심이 아니라 영혼을 소생시키는 ‘치유의 동산’이 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리 앤더슨이 쓴 ‘21세기형 교회’ 속 7가지 교회 유형을 제시하며 “영혼육이 재충전할 수 있는 교회를 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7가지 유형은 크게 가족 중심으로 이뤄진 가족농장 형태의 교회, 성경공부만 하는 학교 형태의 교회, 교단의 지시와 정책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프랜차이즈 교회, 그때그때 적당히 영적 필요를 충족해주는 상점 같은 교회, 초대형교회를 뜻하는 쇼핑몰 형태의 교회, 독특한 한 가지만 있는 전문점 교회, 유령의 집 같은 교회를 뜻한다.

그는 “하은교회는 7가지 유형의 교회가 아니라 온 가족이 손에 손을 잡고 교회에 와서 예배에서 감동을 받고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그런 교회를 꿈꾼다”면서 “그것은 그늘과 같은 교회, 긴장 속에서 살다가 안식일 하루 영과 혼, 육이 편히 쉬면서 재충전할 수 있는 그런 교회”라고 했다.

고 목사는 “그렇다고 교회가 생존에서 겨우 버티는 것을 뜻하는 건 아니다. 분명 말씀으로 세상에 충격을 주는 교회가 돼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선 게으름, 형식주의, 물질주의라는 알면서도 빠지는 세 가지 함정을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회는 세계전문인선교회(PGM)와 함께 알래스카, 멕시코, 티벳, 아이티, 볼리비아 등 25개 지역에서 선교사역을 펼치고 있다.

뉴욕=글·사진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