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뿌리 굳건한 교회… 섬김·나눔의 본이 되다

입력 2020-06-09 20:40
금촌순복음교회 예배 모습.

경기도 파주시 금촌역 바로 앞에 금촌순복음교회가 있다. 성령 충만하여 전도하는 교회, 집중 기도하여 부흥하는 교회, 모든 예배에 성공하는 교회를 표방하는 이곳에는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오중복음과 삼중축복, 4차원의 영성으로 훈련받은 여성 목회자 연충복 목사의 땀과 열정, 눈물과 기도가 서려 있다.

교회당 문을 열고 들어서면 유달리 많은 조용기 목사 사진을 통해 단번에 신실한 조 목사의 제자교회임을 알 수 있다. 복도를 지나 성전에 들어가면 200석 규모의 아담하고 아기자기하면서 예쁘게 꾸며진 모습이 여성 목회자가 시무하는 교회임을 금세 느끼게 해준다.

영제회 회장 취임 축하 케이크를 자르는 조용기 원로목사(가운데)와 연충복 목사.

연 목사는 지난 2월 조용기 원로목사 제자그룹인 영제회의 제4대 대표회장에 연임됐다. ‘조용기 스승 목사님 생신 축하연 및 정기총회’에서 또 다시 임명된 연 목사는 “조 원로목사님을 스승으로 모실 수 있게 만남의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연 목사는 강원도 춘천에서 의사인 아버지와 약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를 따라 교회를 다니게 됐고, 시골에서 살았지만 가정이 유복해 남들보다 외모와 옷차림이 화려하고 눈에 띄어서 학우들의 질투를 받아 학교생활이 어렵고 마음고생이 많았다. 겉은 화려하지만 마음은 늘 무겁고 소외되곤 했다.

그러던 중 고2 때 춘천체육관에서 열린 춘천성시화집회 때 조용기 목사가 신유기도를 하면서 아픈 곳에 손을 대라고 하는 말에 가슴에 손을 대고 간절히 기도했다.

순식간에 마음이 편안함을 느끼면서 기쁨이 몰려왔다. 그때 나중에 서울에 가게 되면 순복음교회를 다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연충복 목사는 1976년 9월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되자 곧바로 순복음중앙교회를 출석했다. 1980년부터는 지역장을 맡아 열심히 교회생활을 하면서 전도에 최선을 다했다. 그러는 가운데 강력한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고 1988년 38세 나이에 영산신학원에 입학했다.

신학교를 다니면서 평소 하던 대로 고급 자동차를 타고 화려하고 멋지게 꾸미고 다녔다. 그러던 중 척추분리증이라는 병에 걸려 걷지도 못하게 됐다. 멋쟁이로 뽐내고 다니다가 갑자기 구두도 못 신는 상황을 맞아 울면서 신학교를 다닐 때가 많았다.

신학교를 다니면서 한번은 신비한 꿈을 꿨다. 넓은 강을 건너가서 두 밧줄을 힘겹게 잡고 올라가보니 순복음신학교였다.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순복음신학교에서 공부하고는 여의도순복음교회 교역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7년간 여의도순복음교회 교역자 생활을 하면서 전도도 1등, 국민일보 보내기도 1등을 하는 등 하는 것마다 1등을 했다.

2006년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정년퇴직을 하고 2007년 지금의 금촌순복음교회를 개척했다. 조용기 목사의 명령을 받고 큰 사랑과 후원을 받으며 개척한 것이다.

그런데 교회를 개척한 이후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만났다. 지금껏 늘 1등만 했던 터라 목회도 순조롭게 될 줄 알았는데 막상 펼쳐지는 상황이 녹록치 않았다. 교회를 개척하면 사람들이 몰려올 줄 알았는데, 어림도 없었다.

토요일이면 직접 시장에 나가서 반찬거리를 사다가 식사 준비를 하고 주일이면 반찬을 만들어 식사대접으로 교인들을 섬기면서 온갖 궂은 일들을 다했다.

그러던 중 2011년 감기 기운이 있어 병원에 갔다가 성대 결절이 왔다고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진단을 받았다. 몸도 아프고 마음도 극도로 지친 그때의 어려움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다. 결국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을 한 다음 2개월 동안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교회 사역을 쉴 수 없었다. 교회의 많은 일을 하면서 설교를 하다 보니 결국은 아예 한마디 말도 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러 목에다 호스를 꽂아 3차 수술까지 했다. 도저히 더 이상 목회를 할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됐다.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 하나님께 매달리는 수밖에 없다는 판단으로 기도원으로 들어갔다. 기도원에서 2개월 동안 쉬면서 하나님께 상황을 반전시켜 달라고 눈물로 기도했다. 그런데 더욱 좋지 않은 일이 닥쳤다. 교회에 전혀 뜻밖의 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교회를 오래 비워둔 기간에 부교역자가 교인들을 데리고 인근에 교회를 개척한 것이다. 안 그래도 힘든데 엄청난 상처와 아픔이 다가왔다.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 생각해서 음대생을 불러다가 “아이오에우…” 하면서 발성연습부터 시작했다. 그동안 내가 너무 교만했나 싶어서 눈물로 회개하고 더욱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로 매달렸다.

그때 몸이 아프고 바쁘다는 핑계로 오랫동안 찾아뵙지 못한 조용기 목사가 떠올라 바로 달려갔다. “목사님, 저 말 할 수 있고 정상적으로 목회할 수 있도록 기도 좀 해주세요” 부탁하자 조 목사는 흔쾌히 간절하게 기도를 해줬다. 제자를 사랑하는 스승 조 목사의 마음이 느껴져 한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경기도 파주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서 말씀을 전하는 연충복 목사.

그러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기도를 받은 다음날 목이 트이면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또 아픈 몸과 지친 마음에 활기가 생기면서 더욱 힘차게 목회를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역시 연 목사에게 조 목사는 영적 스승이자 아버지이면서 멘토였다. 그래서 연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출신으로 조 목사의 제자들 모임인 영제회의 회장을 감사와 영광의 마음으로 연이어 맡고 있다. 530여명의 회원을 거느린 영제회를 이끌면서 최근에는 순복음영산목회대학원 총동문회 회장도 맡았다. 주위의 많은 이들이 여장부라고 하면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이라는 말과 함께 “조용기 목사님 덕분”이라고 말한다.

연 목사는 늘 나눠주고 베풀고 섬겨야 목회뿐 아니라 연합사업을 잘 이끌어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언제나 물질은 물론 마음으로도 섬기는 일을 좀처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실제로 열심히 섬기다 보면 30배 60배 100배의 보상이 돌아온다는 사실을 체험하고 있기도 하다.

금촌순복음교회 홍보용 대형버스. 조용기 목사의 제자교회 임을 강조하고 있다.

연 목사는 고(故) 최자실 목사가 30년 전 기도처로 시작한 지역에 교회를 개척해 목회하고 있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연 목사는 “오중복음과 성령의 권능으로 개인의 삶과 가정과 사회를 치유하며 꿈과 비전으로 축복의 길을 열고 참된 예배로 하나님을 섬기면서 기도와 전도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뤄나가기 위해 숨이 다할 때까지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