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자’ 지위 굳힌 김여정, 北 주민 선동하며 대남 압박

입력 2020-06-08 04:02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을 전면에 내세운 북한이 남북 관계를 격한 대립 국면으로 끌고 가고 있다. 북한 당국은 강경한 대남 발언을 대외 매체뿐 아니라 북한 주민에게 노출되는 노동신문에 게재하고 대규모 군중집회까지 개최하며 판을 키우고 있다. 북한 당국이 대남 공세를 위해 북한 주민을 대규모 동원한 것은 2018년 4월 판문점선언 이후 처음이다.

북한 당국은 지난 4일 김 제1부부장의 대북 전단 비난 담화가 나온 이후 주민들이 참여하는 군중집회를 연일 유도하고 있다. 김 제1부부장 담화 하루 만인 5일 평양종합병원 건설 노동자와 평양 김책공대 학생들이 집회를 했고, 6일에는 평양시 청년공원야회극장에서 청년 학생들의 항의 군중집회가 열렸다. 김일철 내각 부총리 겸 국가계획위원장과 김명길 중앙검찰소 소장 등 고위 간부들의 대남 규탄 기고문도 노동신문에 이틀 연속 실렸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김 제1부부장이 ‘대남사업 총괄’로 호칭되며 대남 압박 국면을 지휘하고 있는 점이다. 김 제1부부장의 대남 비난 담화문이 고위 간부의 기고문에 인용되거나 군중집회에서 낭독되는 등 ‘최고지도자 교시’처럼 받들어지는 듯한 정황도 나타났다. 김 제1부부장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잇는 2인자 지위를 더욱 확고히 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김 제1부부장이 대남 조치와 관련해 “지시를 내렸다”고 통전부가 밝힌 것도 이례적이다. 북한 체제에서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최고지도자인 김 위원장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 제1부부장이 내놓는 대남정책만큼은 김 위원장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거나 그 의중을 100% 반영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북한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이 노동신문에 실린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대북전단 비난 담화를 보면서 대화하고 있다. 주먹을 불끈 쥔 학생도 보인다.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6일 보도한 사진이다. 북한 매체들은 7일에도 대북전단 살포를 성토하는 군중집회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이 김 제1부부장의 담화 등 남북 관계 사안을 주민들에게도 적극적으로 공개하며 선동에 나선 것 역시 이례적이다. 북한은 통상 대남·대외 정책에 대한 입장은 일반 주민들은 접할 수 없는 대외 매체에 밝혀 왔다. 북한 당국 차원에서 완전 통제가 가능한 내치와 달리 상대방이 있는 대남·대외 정책은 실패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북한이 대남 사안을 주민들에게 적극 공개함으로써 자신들이 ‘배수진’을 쳤음을 드러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의 대남 메시지도 갈수록 호전성을 더해가고 있다. 노동당 통일전선부는 지난 5일 밤늦게 발표한 대변인 담화에서 “적은 역시 적이라는 결론을 확고히 내렸다” “대결의 악순환 속에 갈 데까지 가보자는 게 우리의 결심”이라고 주장했다.

북한 외교관 출신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은 7일 이를 “새로운 전략무기 공개나 도발을 위한 전주곡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통일부는 연일 비난수위를 높여가는 북측에 대해 “정부의 기본입장은 판문점선언을 비롯한 남북 정상이 합의한 사항을 준수하고 이행해 나간다는 것”이라는 한 줄 입장만 냈다. 통일부는 이후 대북 전단 살포가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안전·재산 보호를 명백하게 침해할 경우 법률에 의해 제한될 수 있다는 법원 판결을 배포한 참고자료를 통해 소개했다.




조성은 김이현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