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 원대복귀” 미 국방부 신의 한수… 최악 사태 막았다

입력 2020-06-08 00:14
흰 옷을 입고 마스크를 쓴 흑인 가족들이 6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래퍼드의 한 교회에서 열린 조지 플로이드의 두 번째 추모식에 참석하고 있다. 래퍼드는 경찰의 체포 과정에서 숨진 흑인 플로이드의 고향이다. AFP연합뉴스

미 국방부가 5일(현지시간) 수도 워싱턴DC 근교에 배치했던 현역 군인들을 전원 원대 복귀시켰다. 국방부는 다른 주에서 워싱턴에 파견했던 약 4000명의 주방위군에 대해서도 철수를 요청했다. 이로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촉발한 ‘시위 진압 군 투입’ 논란은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CNN은 6일 이번 시위의 결정적 국면이었던 연방군 배치 논란을 복기한 ‘벙커 뒤 숨은 이야기’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초 워싱턴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1만명의 연방 정규군을 투입하려 했으나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과 마크 밀리 합참의장 등 군부 고위 관계자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트럼프의 연방군 배치 결정을 촉발시킨 건 그가 지난달 29일 백악관 앞 시위대를 피해 백악관 지하벙커로 대피했다는 보도였다. 약해보이는 걸 죽기보다 싫어한다고 알려진 트럼프 대통령은 해당 보도에 격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1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시위 진압을 위해 연방군을 투입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했고, 이후 걸어서 인근 세인트존스 교회로 이동해 성경책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군은 정치에서 독립돼야 한다고 믿는 군부 고위 관계자들과 퇴역 장성들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교회로 가는 길에 에스퍼 장관과 밀리 합참의장이 동행한 것에 우려를 표시했다. 국민들에게 군부가 계엄령을 향한 움직임에 동조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초대 국방장관을 지낸 제임스 매티스는 지난 3일 잡지 기고문을 통해 트럼프의 군 투입 방침을 작심 비판했다. 그는 “약 50년 전 군생활을 시작했을 때 헌법을 수호하겠다는 맹세를 했다”며 “나와 같은 맹세를 한 군인들이 우리 시민들의 헌법적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명령을 받게 될 것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한 적 없었다”고 말했다.

군 베테랑들의 질책에 당초 군 투입에 동조했던 에스퍼 장관은 지난 3일 기자회견을 자처해 “현역 병력의 투입은 마지막 수단”이라며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밀리 합참의장도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등 민주당 지도부와의 이틀에 걸친 통화에서 시위 현장 현역군 투입은 절대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6일(현지시간)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열린 조지 플로이드 사망 항의 시위에 참가한 한 여성이 콜로라도 주의회 의사당에 그려진 플로이드의 분필 초상화 주위에 꽃을 놓고 있다. AFP연합뉴스

한편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이후 두 번째 맞는 주말인 이날 미국 전역에서는 최대 규모의 시위가 열렸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워싱턴에서만 1만명 이상이 시위에 참가했다. 플로이드의 고향 노스캐롤라이나주 래퍼드에선 두 번째 추도식이 열렸다. 현지 언론은 4만여명의 추도객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줄을 섰다고 전했다.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LA)에서도 대규모 인파가 시위에 참여했지만 과격·폭력 시위는 눈에 띄게 줄었다. 폭력 시위가 잦아들면서 워싱턴, 조지아주 애틀랜타, 텍사스주 댈러스 등은 통행금지령을 해제했다.

워싱턴에 파견됐던 주방위군은 이르면 8일 철수한다. 워싱턴DC 주방위군 윌리엄 워커 사령관은 CNN 인터뷰에서 “국방부의 요청으로 11개주에서 파견된 주방위군들이 이르면 8일 워싱턴을 떠난다”고 밝혔다.

이형민 권지혜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