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담화와 군중집회를 통한 북측의 대남 공세가 예사롭지 않다. 단순한 말 폭탄을 넘어 마치 머지않아 도발에 나설 듯이 달려들고 있다. 그런 공세가 설사 내부 단결을 꾀하고 교착된 비핵화 협상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라 하더라도 그 표현의 수위가 지나친 것은 물론, 코로나19 위기가 불어닥친 마당에 할 도리도 아니다. 특히 노동당 통일전선부가 5일 낸 담화에서 군사 도발까지 시사한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북측은 담화에서 대북 전단 살포를 비난하며 “갈 데까지 가보자. 깨버릴 건 빨리 없애버리는 게 낫다. 남측이 몹시 피로해 할 일판을 준비 중이다”고 도발을 예고했다. 바로 전날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폐지, 개성공단 철거, 남북군사합의 파기를 내비친 데 이어 나온 ‘대남 협박 2탄’인 것이다. 평양에서는 이와 관련한 군중집회까지 열렸다.
북측의 막가파식 대남 비난과 도발 예고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의 대응은 안일하다 못해 굴욕적이기까지 하다. 통일부는 7일 북측 위협에 대해 “우리 기본입장은 판문점 선언을 비롯한 남북 정상이 합의한 사항을 준수하고 이행해 나간다는 것”이라는 앵무새 같은 답변만 늘어놨다. 김 제1부부장이 대북 전단을 막을 법 제정을 요구해 정부가 몇 시간 만에 그러겠다고 한 데 이어 이번에는 군사 도발까지 시사했지만 단 한마디의 비판도 하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이날 북한 매체 ‘우리민족끼리’가 문재인 대통령을 콕 집어 현 정부 대북 정책을 ‘달나라 타령’이라고 조롱하고, ‘무지와 무능의 극치’라고 비아냥거렸는데도 청와대 역시 이에 일언반구도 없었다.
정부가 북측의 안하무인격 행태에 더이상 할 말도 못 한 채 끌려다니기만 해선 안 된다. 특히 도발 가능성에 침묵하는 건 북측의 오판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그냥 넘어가는 것 자체가 직무유기나 진배없다. 이런 침묵과 저자세 대응이 반복되면 북측에 ‘남한을 압박했더니 통하더라’는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 또 이런 식의 관계라면, 설사 향후 관계가 개선돼도 북측이 계속 무리한 요구를 하고, 우리는 줄곧 들어줘야만 하는 상황이 올 게 뻔하다. ‘일판을 벌이겠다’는 협박도 흘려들어선 안 된다. 대북 전단 문제로 과거 남측을 향해 고사총 도발을 한 전력이 있는 만큼 실제 도발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정부가 한쪽 눈을 감고 마냥 관계 개선만 기다릴 게 아니라 그 반대의 관계 악화는 물론, 군사 도발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엄정히 대처해 나가길 바란다.
[사설] 합의준수 타령만 말고 北에 할 말 하고 도발에 대비해야
입력 2020-06-08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