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세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마르크시즘은 크게 두 흐름으로 나타났다. 하나는 마르크스-엥겔스의 주장을 따르는 소련 중심의 정통 마르크시즘이고 또 하나는 정통 마르크시즘을 비판하며 마르크시즘을 재해석한 그람시와 루카치를 중심으로 등장한 ‘서구의 마르크시즘’이다. 그람시와 함께 서구의 마르크시즘을 개척한 또 한 사람이 헝가리 출신 공산주의자인 게오르그 루카치(1885~1971)다.
‘의식’의 영역을 개척한 루카치
루카치는 정통 마르크시즘과 서구 자본주의를 동시에 비판했다. 이 때문에 양측의 공격을 받았다. 그는 서구 자본주의를 분석하면서 인간 소외의 문제가 경제적 차원만이 아닌 의식의 영역까지 퍼져 있음을 지적했다. 소외의 문제 해결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안 되고 계급적 각성과 집단적인 혁명적 실천을 통해 이룩될 수 있다고 했다. 그람시와 함께 경제를 넘어 ‘의식’의 영역까지 개척했다는 점에서 서구 마르크시즘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루카치의 ‘총체성 개념, 사물화를 통한 인간 소외의 탐구, 헤겔 변증법의 복원, 수정주의와 정통주의에 대한 비판’ 등은 이후 프랑크푸르트학파에 많은 영감과 방법론을 제공해줬다.
프랑크푸르트학파와 ‘비판이론’
프랑크푸르트학파는 192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에 설립된 ‘사회연구소’에서 시작됐다. 이 학파는 ‘독일, 파시즘, 유대인, 마르크시즘’이라는 네 단어로 축약해도 반은 이해한 것과 다름없다.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마르쿠제, 프롬, 벤야민, 폴록, 하버마스 등의 학자들이 이에 해당된다.
이 연구소는 1933년 히틀러의 파시즘 정권의 박해를 피해 스위스 제네바로 옮겼다가 1934년에는 미국 컬럼비아 대학으로 옮겨 활동했다. 이들은 파시즘을 연구하고 비판했으며 2차 세계대전 후에는 선진 산업사회로 눈을 돌려 연구와 비평을 했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치르면서 이들의 눈에 비친 노동자 계급은 형편없었다. 혁명성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파시즘에 동조하기까지 했다. 소련의 스탈린 정권도 경직된 관료주의와 국가자본주의 체제에 빠졌다. 혁명세력조차도 교조적 도그마에 갇혀 더 이상 소망이 없어 보였다.
이때 막스 베버의 합리화 이론, 프로이트의 심리학, 현대 언어학, 미국 사회학적 방법을 결합해 현대산업사회의 다양한 병폐와 문제들을 철학적으로 비판하면서 경제를 중심으로 한 전통적 마르크시즘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한 이들이 프랑크푸르트학파다. 이들이 정치, 문화,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로 탐구영역을 확대하면서 형성된 것이 비판이론(critical theory)이다. 비판이론은 문화 마르크시즘의 이론적 바탕이 됐다.
‘신좌파의 아버지’ 마르쿠제
이 학파에서 주목할 인물은 프로이트와 마르크시즘을 결합한 빌헬름 라이히의 성정치를 계승한 마르쿠제(1898~1979)다. 마르쿠제는 1960~70년대 서구의 학생운동에서 마르크스(Marx) 모택동(Mao)과 더불어 ‘3M’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그는 선진 산업사회를 비판하고 정치적 급진주의를 옹호한 사람으로서, ‘68혁명의 영웅, 신좌파(the New Left)의 아버지’로 불렸다. 그는 철저한 마르크스주의자였다. 그는 ‘에로스와 문명’이라는 저서에서 인간의 욕구를 억압하지 말라고 했다. 억압되지 않은 의식 속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유토피아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마르쿠제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일차원적 인간’에서 산업사회의 이데올로기 조작에 의한 체제 순응적인 1차원적 인간에서 벗어나 비판과 사유를 하는 2차원적 인간이 되라고 주문했다.
‘구체제와 권위를 거부하는 인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인간’이 되라는 요청은 60년대 젊은층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유토피아를 꿈꾸라! 그러면 소외, 억압, 착취에서 해방된 유토피아를 이룰 수 있다.” 많이 듣던 문구 아닌가. 68혁명과 스톤월 폭거에 등장했고 오늘의 좌파들이 외치는 선전 문구다.
체제를 거부한 프랑스의 68년 5월 봉기, 미국의 흑인 인종차별 반대운동, 베트남전쟁 반대운동, 반기술 문명운동, 권위주의 구체제에 저항하는 급진적 변혁운동에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이 영향을 끼쳤다.
러셀 커크는 ‘보수주의 안내서’에서 교육의 중요한 목적은 “사람들을 지적이고 선하게 만드는 것이다. 학교는 건전한 지적·도덕적 규율을 심어주는 중요한 곳이며, 바람직한 규율은 자기절제이며 학교는 정신적·윤리적인 자제심을 심어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한국에선 이와 정반대의 사상이 담긴 젠더교육을 강행함은 물론 각종 병든 학생인권조례를 발의하고 있다. “부모와 교사의 권위를 부정하라. 성적 자기결정권을 주장하며 자기본능에 충실하라”는 선동에는 비판이론의 영향이 깊이 배어 있다.
참된 교육의 목적은 개인의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능력의 계발에 있다. 집산주의(collectivism, 集産主義) 즉, 토지 공장 철도 광산 등 주요 생산수단을 국유화해 정부의 관리하에 집중·통제하는 것을 이상으로 하는 사람들을 위한 권력의 도구 혹은 홍위병 양성에 있는 게 아니다. 보편적 가치가 배제된 비판이론으로는 책임 있는 시민질서가 세워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