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묻지마 폭행’ 영장 기각… “긴급체포 위법”

입력 2020-06-05 04:05

이른바 ‘서울역 묻지마 폭행’ 피의자 이모(32)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법원은 이씨가 집에서 자고 있을 때 경찰이 이씨를 긴급체포한 것을 문제 삼았다.

서울중앙지법 김동현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4일 상해 혐의를 받는 이씨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씨는 지난달 26일 공항철도 서울역 1층에서 30대 여성의 얼굴을 가격해 상처를 입히고 도주한 혐의를 받는다. 철도경찰은 경찰과 공조수사를 통해 지난 2일 이씨를 서울 동작구 자택에서 체포했다. 피해자 측이 SNS에 글을 올려 ‘여성 혐오 범죄’가 발생했다는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김 부장판사는 영장을 기각하면서 이례적으로 1100자가 넘는 장문의 기각 사유를 밝혔다. 헌법 조항 등을 근거로 볼 때 긴급체포는 엄격한 요건을 갖추고 이례적으로 실시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형사소송법에는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 우려가 있는 긴급한 경우로 긴급체포 요건을 규정하고 있다. 법관의 체포영장을 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을 때 긴급체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경찰은 이씨의 자택을 찾아가 초인종을 눌렀다. 휴대전화로 전화도 걸었지만 이씨는 받지 않았다. 이씨는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다가 체포됐다. 김 부장판사는 경찰이 이씨의 신원을 알고 있었고, 도주나 증거를 인멸할 상황도 아니었는데 긴급체포 한 것은 위법하다고 지적했다.

체포영장을 발부받을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데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간 것은 요건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긴급체포가 위법한 이상 구속영장 청구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판단이다. 김 부장판사는 “한 사람의 집은 그의 성채라고 할 것인데 비록 범죄 혐의자라 해도 주거의 평온을 보호받음에 예외를 둘 수 없다”고 설명했다.

법원에서는 수사기관의 인신 구속 절차에 대해 경종을 울린 결정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그간 수사기관에서 긴급체포를 함부로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에 제동을 걸었다는 평가다. 법원 관계자는 “긴급체포의 요건이 아주 엄격하다. 해당 요건을 교과서적으로 본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